미국의 통상압력에 우리 정부는 늘 수동적으로 대응해왔다. 통상조치가 나오기 전에 대응논리를 세워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일이 터진 다음에야 민관대책반을 가동하기 일쑤다.
이번 하이닉스 사태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11월 상계관세 부과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됐음에도 정부와 반도체 업계가 따로 놀았다. 실사를 앞두고 정부 대책팀과 업계는 이제서야 협의체를 가동했다.
미국의 새로운 통상압력 카드로 떠오른 ‘무선인터넷 풀랫폼’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신문 보도를 포함해 여러차례 적색경고가 내려졌음에도 외통부는 물론 주무부처인 정통부도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뒤늦게 미국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라이선스 협의를 추진하는 등 대책을 강구중이나 미리 나왔다면 전혀 문제되지 않았을 사안이다.
정부는 지난해말 미국의 하이닉스 상계관세 부과 조짐이 나오자 대책팀을 다시 가동했다. 대책팀은 지난해 6월 독일 인피니온이 EU집행위에 제소할 때 구성됐다. 외교통상부·금감원·재경부 등의 실무자들은 수시로 모여 대책회의를 가져왔고 산자부도 전문 법률법인과 업계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다. 지금은 산자부 차관을 단장으로 외통·재경·금감원·은행 등의 관계자가 머리를 맞대고 반박논리를 개발한다. 하이닉스에 대한 지원은 정부 보조금이 아니라 채권회수를 위한 민간의 자율적인 지원이며 미국 D램산업 약화도 세계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인수협상을 벌이기 훨씬 이전에 나왔던 제소 움직임에 대한 반박논리와 동일하다. 그 당시에도 이 논리가 통해 마이크론의 제소는 불발로 끝났다.
그러다가 이번에 상계관세 부과조치가 나왔다. 이를 두고 미국정부가 실제로 이를 부과하겠다기보다는 압력용으로 쓰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으나 뒤집어 보면 우리 정부가 그간 해온 게 뭐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적극적으로 논리를 전파하지 못해 미국정부가 죽은 카드를 다시 끄집어냈다는 분석이다.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의 경우 정통부는 지난해 11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민관합동 전문가토론회를 갖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정통부와 민간 대표들은 지난 2월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 정부와 업체들이 위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게 정통부 관계자의 말이었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로부터 특허침해를 했다며 스페셜 301조 발동 필요성을 언급한 건의문을 접수했다.
미국의 막무가내식 압력도 비판해야 마땅하나 토론회를 갖기로 합의하고 그 다음달 WTO에 위피 의무화 방침을 통보한 성급성이 어느 정도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는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늘 약자의 입장이었다. 수출에서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대응논리도 늘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시장이 여전히 크나 예전같지 않다. 하이닉스만 해도 미국시장 비중이 27% 수준이며 이 가운데 17%는 미국 유진공장 생산물량으로 소화할 수 있다.
이는 약자논리 전파 위주의 통상전략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변화의 조짐은 나타났다. 하이닉스가 아닌 미국내 고객들이 미국 정부에 관세부과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