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을 세계 일류로 키울 방법은 없을까.’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 제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자신문사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회장 김선배)는 8일 서울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창립15주년 기념 ‘SW산업 발전을 위한 특별좌담회’를 개최하고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능성과 현주소, 대안을 진단했다. 편집자
<참석자>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김선배 회장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주헌 원장
△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
△한국리눅스협의회 최준근 회장(한국HP 사장)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이단형 원장
△사회=전자신문사 이윤재 논설위원
◇사회=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창립 15주년을 축하한다. 한국의 SW산업은 온오프라인을 망라한 국가경쟁력의 잣대가 될 수 있는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정부와 업계 여러분이 노력한 결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IT산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적으로 HW 위주로 육성정책이 추진돼온 것이 사실이다. 이 자리는 그동안 HW 중심의 IT산업 축을 SW로 전환하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위해 마련됐다. 아무래도 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김선배 회장께서 말꼬를 열어야 할 것 같다.
◇김선배(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돌이켜본다면 SW산업은 80년대 태동기, 90년대 성장기를 거쳐 2000년대에는 성숙기로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90년대는 특히 고도성장으로 91년 이후 매년 평균 40% 고성장세를 유지했다. IMF 사태가 터졌던 98년 이후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지만 이후 SW산업만큼은 정부 차원에서도 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고 민간에서도 전산관련 투자가 되살아나며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총생산액은 지난해 대비 17.4% 증가한 17조8000억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분간은 20∼30% 성장세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회=양적으로는 성장했겠지만 질적인 문제는 다르다는 생각이다.
◇김선배=정확한 지적이다.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SW업계의 내실, 즉 수익성 문제가 큰 고민으로 대두된다. 과당경쟁으로 인한 덤핑수주가 빈번히 발생하고 저가수주로 인해 사업자 수익성이 악화돼 다시 과당경쟁을 부르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저가입찰은 수요자에도 결국 시스템 품질저하 문제를 가져오고 예산절감 의도와 달리 몇 배의 유지보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덤핑이 빈번해 수익악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이 앞장서 국가계약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주헌(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참여정부가 구호로 내건 목표가 ‘정보통신 일등국가’다. 정보통신 일등국가의 개념에는 디지털경제를 주창하는 논리 못지 않게 일등에 대한 정부의 강한 정책적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SW산업은 ‘일등’으로 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SW산업은 대기업 일변도로 성장해왔으며 이 결과 중소기술업체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부작용이 존재한다. 국내 시장도 협소하고 공공시장이나 대기업시장은 과당경쟁이 빚어지는 등 난관이 산재하다.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업계 대표들로 구성된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회장단이 앞장서 정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거나 공동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자구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정부가 선정한 9대 신성장산업 중 SW가 빠졌다는 게 안타깝다.
◇이단형(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벤처는 물론 대기업 중에서도 SW로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우리나라 전체 생산액 중 해외시장에서 활약하는 것은 3%에 불과하다. 반면 경쟁국들의 경우 75%가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SW업계가 어떻게 밖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우리 기업들은 동남아·중국·중남미·동유럽 등을 조금씩 개척하고 있지만 전세계 수출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미국과 EU시장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SW산업은 분명히 희망이 있다. 건설·화학·철강·조선 등 제조업분야 세계 일등제품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해서 제조업과 접목한 SW, 예를 들면 임베디드SW를 집중 개발해야 한다. SW산업은 2, 3차산업에 접목돼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SW의 경쟁력은 향후 다른 산업들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앞으로 5∼10년이 가장 중요하다. 인도나 중국 등 신흥강국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이 시점에 서둘러 경쟁력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비교우위는 사라지고 곧 추월당할 것이다.
◇조현정(비트컴퓨터 사장)=디지털사회에서 제대로 된 고급인력을 선호하는 현상은 당연하다. 정부는 인력양성을 구호로 내걸면서 이제까지 비전공자를 6개월간 교육시키면 산업에서 필요한 인력으로 양성할 수 있다는 안이한 발상으로 대처해왔다. 대학에서 이공계 학생들을 데려와도 산업에 필요한 인력으로는 역부족인 현상을 초래했다. 자격증제도 역시 시험을 보기 위한 시험일 뿐 큰 의미가 없다. 이는 정부가 민간기업이나 교육기관에 제공하는 지원의 기준이 정성적 평가가 아니라 정량적 평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정부에 무이자 장기 교육비 지원을 제안하고 싶다. 카드사와 제휴해 무이자 장기대출 형태로 학생들에게 교육비를 대출해 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글로벌 IT인력양성도 중요하다. 우리 소프트웨어 업계의 고민은 국제적인 기업이 한국에 와서 SW개발센터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벌 IT인력양성기관을 만들어 일본·대만 등 외국의 인재들이 한국에 와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수강생끼리 네트워크를 구성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시장에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가 구성되도록 해야 한다. 인력양성 차원에서 병역특례대상자 수를 늘려야 한다.
◇이단형=소프트웨어산업을 흔히 사람장사라고 한다.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인력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력들이 HP나 인텔 등 다국적기업 본사에서도 탐낼 만한 인력이 되게 양성해야 한다. 이 인력들이 우리 벤처기업에서도 경쟁력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외 기업에 취업을 해서 실전 경험을 쌓은 후 국내와 연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사회=업계 현안인 SI덤핑 입찰에 대해 얘기해보자. 덤핑은 결국 제도적모순과 업계 과당경쟁의 합작품인데 이를 개선하는 방안은 없나.
◇김선배=지난 2월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덤핑 문제부터 풀어가겠다고 공약했다. 그만큼 시급한 문제다. 특히 참여정부가 정보통신 일등국가를 내세우고 있는 시점에서 덤핑 관행은 더욱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즉 고객사들의 사고 방식이 대단히 중요하다. IT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사용자들이 아직도 IT를 투자로 보고 있지 않은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사용자는 제값을 주고 입찰에 참여하고 SI업체는 솔선수범해서 제값받기 운동에 나서야 한다.
◇이주헌=먼저 업계의 심각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덤핑은 제도적인 억제책보다는 SW업계의 자성책이 먼저다. 지금까지 업체들은 대응책을 업계 공동으로 정부에 건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대기업들이 SW업계에서 공동으로 대안을 못찾고 정부만 바라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협회의 회장사들이 자정노력을 하고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조성해서 산학협동기금을 마련할 수도 있다. IT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지만 SI업체가 고객에게 투자효과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최준근(한국리눅스협의회 회장)=구매자 입장에서는 싼 값에 살 권리가 있는데 정부에서 제도화하는 것보다는 업계의 자체 정화가 필요하다. 한국HP도 SI사업을 하는데 직원을 대폭 줄이고 특화된 분야만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SI업체들의 상장을 통해 경영의 투명화가 조성되는 것도 중요하다.
◇김선배=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이 문제는 SI업체와 사용자의 공동 책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덤핑 관행을 SI업계가 조장하고 있지만 사용자도 이 관행을 이용하고 있다. 사용자 스스로 거저 얻겠다는 생각을 못갖도록 제도적으로 제한을 둬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의 관행에 따라 2단계 입찰을 할 경우 기술점수 발표 후 가격입찰이 나오다보니 기술점수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폐단이 발생한다. 이런 제도적 폐단을 두고 왜 업계만 자정노력을 해야 하나.
◇사회=어느 한쪽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야기의 초점을 바꿔보자. 유망 SW분야로 미들웨어·임베디드·모바일이 꼽히고 있다. 선택과 집중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과연 한국 SW산업의 성장 엔진은 무엇인가.
◇최준근=다국적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ERP, SCM 등 애플리케이션을 우리가 개발해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유망 SW는 첫번째가 임베디드다. 이미 한국은 이동전화단말기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고 PDA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유비쿼터스컴퓨팅 환경에서 보면 임베디드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의료·제조·유통·물류 등 거의 모든 산업을 망라한다. 두번째는 공개 SW 기반의 미들웨어다. 유닉스 등 기타 OS를 보면 상당히 폐쇄적이다. 공개 SW로 미들웨어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리눅스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 모바일에서도 컬러링·GPS·통신단말기를 이용한 문자서비스·정보서비스 등은 아이디어로 성공할 수 있는 케이스다. 이런 분야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현정=SW는 문화와 파생상품까지 팔기 때문에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필수과제다. 한국이 IT강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갖고 있는 점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3∼4년 뒤 다른 나라가 쫓아오면 그땐 이미 늦는다. 대중가수 보아의 일본 열풍은 50년이 보장된 비즈니스라고 한다. SW도 최소 30년은 보장된 비즈니스라고 본다. SW사업을 수주했을 때 정부가 매칭펀드를 지원하는 등 중소기업을 독려해야 한다.
◇김선배=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망이나 무선통신망 등 커뮤니케이션 인프라가 잘돼 있는 나라다. 동시에 자동차·가전 등 제조업 기반이 강한 나라다. 진취적인 SW 벤처기업도 많다. SW산업이 미래산업·기간산업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기반에서 가전이나 GPS·방송·통신 등 유무선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기술이나 패러다임에 맞는 SW산업으로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SI사업 분야 중 차세대 전자정부사업, 교육부의 대학정보화사업에 대해서 업데이트하고 정비해 나가면 경쟁력 있는 모델이 될 것이다. 국방 정보화나 모바일 금융 등도 유망 분야다. 궁극적으로 유비쿼터스, LBS 환경으로 가는 추세에 맞춘 업체들의 기술적인 준비가 있어야 한다.
◇사회=장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에 감사한다. SW산업이 국가전략 산업이라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에 특히 정부정책 담당자들이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리=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