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주변. 이 일대를 흔히 용산전자상가라 부른다. 지난 80년대 말 국내에서 컴퓨터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컴퓨터 마니아가 즐겨 찾던 곳이다. ‘용산에 없는 제품은 대한민국에 없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다양한 컴퓨터 제품을 취급하는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자유통의 메카라는 이곳도 지금은 상황이 180도로 바꼈다. 대단위 전자제품 매장이 서울 도처에 등장하고 인터넷 쇼핑이 대중화되면서 용산전자상가의 위상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에 용산도 생존 차원에서 변신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편안한 쇼핑을 위해 매장을 리노베이션하고 영화관 등 문화공간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물론 용산이 이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외형적으로 변해야 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용산이 갖는 이미지다. 흔히 용산하면 원하는 전자제품은 무엇이든지 살 수 있지만 가격이나 상품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이 팽배하다. 용산을 찾는 고객은 무조건 깎아야 한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상술에만 눈이 어두운 용산 매장 직원을 ‘용팔이’라고 비하해 부르기도 한다. 오죽하면 사이버 공간에 ‘용산의 실태와 공략법’이라는 글이 유행할 정도다.
실제로 PC와 함께 판매해야하고 단독으로 판매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 윈도 DSP 버전이나 MS사무용 통합 소프트웨어가 용산 유통상가에서 버젓이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거래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비매품 DVD 타이틀이 정품으로 둔갑돼 팔려 물의를 빚었다. 탈세를 위해 신용카드를 거부하고 현금만 고집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 온 지 오래다.
용산은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누가 뭐래도 국내 전자유통의 중심지다. 용산이 안팎의 어려움에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데는 국내의 PC·부품 등 대부분의 컴퓨터 관련 제품이 용산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직도 수입제품의 첫번째 집산지는 용산이며 총판과 대리점이 모두 용산 일대에 몰려 있다. 용산의 이 같은 강점을 십분 살리면서 용산의 잘못된 이미지를 바꿔 나가는 것이 결국 전자유통 메카라는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용산이 갈수록 예전의 명성을 잃어가는 것은 결국 자승자박”이라는 용산의 한 터줏대감의 목소리에 심각하게 귀기울일 때가 바로 용산 변화의 시작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