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 `수주전` 사활 건 레이스 `시동`

 슈퍼컴퓨터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방과학연구소(ADD), 기상청이 슈퍼컴퓨터의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한국IBM·한국HP·크레이 등 중대형 컴퓨팅 기업들이 수주를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들 3사는 프로젝트 윤곽을 비롯해 시스템 도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요처 동향을 입수하느라 여념이 없다. 일부 업체의 경우 본사에 기술요청까지 해놓고 수요처의 마음을 잡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관련기사 본지 3월 6일자 1·3면 참조

 특히 이번 슈퍼컴퓨터 수주전은 △전체 수주액이 600억원 규모에 이르는데다 △그동안 대학과 연구소 등지에서 쓰였던 PC 클러스터 방식의 슈퍼컴퓨터를 국가기관(KISTI)이 대규모로 도입하는 첫 사례이며 △기존 벡터 방식의 슈퍼컴 진영과 유닉스 기반의 대칭형멀티프로세싱(SMP) 진영이 격돌하는 등 굵직한 이슈가 부각될 것으로 보여 개별기업 및 슈퍼컴 진영이 사활을 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KISTI·ADD·기상청 3대 프로젝트=KISTI의 슈퍼컴퓨터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대형 클러스터 슈퍼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프로젝트로 의미가 있다. KISTI는 현재 128노드 규모의 클러스터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지만 분자생물학이라는 특정 분야에 한정해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번에 구축을 추진하는 클러스터 슈퍼컴퓨터는 512개 CPU를 이용하는 대규모 시스템인데다 외부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연구소 차원에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KISTI가 2004년에 도입하는 슈퍼컴퓨터 4호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KISTI는 27억원 규모의 예산을 책정했으며, 이달 20일 전후로 제안요청서(RFP)를 발주하고 5월중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KISTI 측이 당초 인텔 칩 기반의 클러스터 구축에서 ‘AMD 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선회함에 따라 경쟁구도 역시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90억원 규모의 예산이 책정된 ADD는 당초 현재 사용중인 크레이의 장비와 같은 벡터형 장비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SMP 방식의 상용서버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새로운 경쟁구도를 예고하고 있다.

 또 주 시스템 외에도 보조시스템에 대해서는 클러스터시스템을 적용할 방침을 세우고 있어 클러스터 전문기업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3000만∼4000만달러 규모로 오는 2006년 10테라플롭스 규모의 성능을 구현하는 슈퍼컴퓨터 2호기 도입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상청은 규모 면에서 여느 프로젝트보다 주목받고 있다.

 기상청은 1호기 도입 때처럼 한꺼번에 시스템을 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새로운 기상모델 개발 등 관련 애플리케이션 준비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개발과 적용기간을 고려해 시스템을 3단계로 나눠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또 현재 전산센터가 포화상태라 2호기는 외부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설치될 예정이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NECSX-5/28M2 기종은 일부 업무에 대해 1년 정도 사용한 후 시스템 가동 중단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기술적으로는 서버 상용제품을 이용한 클러스터 SMP 방식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하반기 시행될 벤치마킹테스터(BMT)의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어떤 사업자들이 덤비나=KISTI 프로젝트의 경우 현재 한국IBM·한국HP·삼성전자·크레이코리아 등이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AMD 진영의 참여도 예상된다.

 무엇보다 한국IBM·한국HP 두 업체간 경합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KISTI 슈퍼컴 도입에서 한국IBM의 기증 프로그램 때문에 고배를 마신 한국HP에는 이번 프로젝트가 ‘설욕전’이다. 한국HP는 이미 연구용 주전산기로 슈퍼돔 2대를 기상청에 공급한 실적이 있는데다, 2006년까지 기상청이 요구하는 안정된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아이테니엄 기반의 서버 로드맵을 확실히 갖춘 만큼 기술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기상청에 서버·스토리지 전체 하드웨어 기종을 통틀어 단 한대의 제품도 공급하지 못한 한국IBM은 이번이야말로 ‘구겨진 자존심’을 세울 기회다. 기상청 프로젝트에 대한 IBM의 수주 의지는 IBM 본사가 최근 4명의 엔지니어로 구성된 ‘기상청팀’을 한국에 특파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기상청 슈퍼컴 프로젝트가 7∼8월께 예산이 확정된 이후 BMT를 거쳐 내년 1분기나 돼야 하드웨어 공급업체 선정으로 이어짐에도 이미 본사에서 미리 특사를 보낸 것은 그만큼 수주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벡터형 방식의 전통적인 슈퍼컴퓨터 진영의 수성 의지도 강하다. 수요처에서 SMP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 슈퍼컴퓨터시장에서 벡터형 진영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위기감마저 엿보인다.

 한편 크레이코리아는 델 서버를 기반으로 KISTI 프로젝트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져 있어 국내 영업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