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용에 국한되던 ‘전략물자 수출통제제도’가 민수용으로 확대되는 캐치올(catch-all)제도가 올해부터 실시되고 있으나 국내 업계의 대응이 소홀한 것으로 밝혀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이라크전이 조만간 종결, 대량살상무기(WMD) 조사에 들어가고 국산 반도체 및 부품이 이에 사용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대비책이 없는 국내 업계는 국제적인 제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10일 산업자원부 및 업계에 따르면 전략물자가 군사용도에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에서 보증하는 ‘전략물자수출 포괄허가’제도가 지난해 12월부터 실시되고 있으나 지금가지 허가증을 받은 곳은 반도체업체 두 군데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두 기업마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 순수 국내 기업은 전무한 형편이다.
더욱이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반도체업체들과 삼성전기·LG이노텍 등 부품소재 대기업 역시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하이닉스·삼성전기 등의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전략물자수출 포괄허가증이란 게 있었느냐. 우리는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내 업체들의 무관심과 달리 미국의 거의 모든 반도체 및 부품소재 수출 기업들은 포괄허가증을 받고 수출하고 있으며 일본도 900여개 업체가 이 허가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자원부 수입과 김경종 과장은 “지난해 12월 전략물자수출 포괄허가증에 대한 공시를 했고 공문을 각 기업에 보냈다”며 “기업들이 이 제도를 국내 허가제도와 같은 규제로 인식해 허가증 발급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전략물자임을 모르고 수출한 후 불법거래로 적발되는 경우에는 국내 기업도 국제적인 분쟁에 연루될 수 있어 관련기업들의 적극적 대응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광원(레이저)용 장비 제조업체로 최근 전략물자수출 포괄허가증을 받은 싸이머코리아 팽재원 사장은 “중국·대만·싱가포르 등에 수출하기 위해 미국 본사에서 먼저 허가증을 요구했다”며 “이 제도는 의도하지 않은 불법거래를 방지할 수 있고 분쟁시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에 허가증을 획득했다”고 말했다.
전략물자 수출통제제도는 핵공급국그룹(NSG)·바세나르협정(WA) 등 국제 수출통제체제 회원국들이 각국의 책임 아래 수출품이 대량살상무기나 재래식 무기 등 군사용에 쓰이지 못하게 한 제도였으나 올해부터는 민수용 제품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 이 제도를 위반할 경우 1년간 수출입 금지, 벌금·징역 등 강력한 제재가 따르게 된다. 대상품목은 화학물질·방산물자 외에도 신소재·전자·컴퓨터·센서·레이저 등 9개 일반산업용 물자가 모두 포함돼 있다.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