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개혁은 불역유행(不易流行)의 큰 원칙 하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이는 바꿀 것은 바꾸고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은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이를 바탕으로 SJC 회원을 위한 SJC가 되어야 한다는 것, 한·일 양국의 우호친선을 위한 SJC가 되어야 한다는 것, 글로벌화 속에서의 SJC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 세가지 개혁을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지난 1월 28일 일본 기업인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인 서울재팬클럽(The Seoul-Japan Club)은 정기총회에서 제7대 이사장으로 추대된 다카스기 노부야 한국후지제록스 회장(62)의 첫마디다.
SJC도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미국, 유럽 주한상공회의소들처럼 위상을 높이겠다는 게 포부다.
SJC는 지난 97년 개인이 중심이 된 일본인회, 일본계 상사 및 은행의 모임, 투자를 위해 한국에 진출한 조인트벤처 모임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탄생했다. 그동안 이사장직은 미쓰이 물산과 미쓰비시 등 상사에 종사하는 회원이 매년 번갈아 가며 맡았다.
다카스기 이사장은 한국에 온 지 정확히 만 5년이 됐다. 강하고 즐겁고 정다운 회사를 만들기 위해 98년 3월 한국후지제록스의 전신인 코리아제록스에 대표이사로 부임한 그는 이제 강하고 즐겁고 정다운 동북아 경제를 설파하고 있다. 다카스기 노부야 SJC 신임 이사장은 평소에도 한·일간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온 인물로 유명하다. 언론과의 인터뷰나 민·관·학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한·일 FTA 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SJC는 최근 두가지 커다란 변화가 있었습니다. 최근 일본상공회의소가 SJC에 참여한 것이 첫번째고 6년만에 제조업체 CEO가 이사장을 맡은 것이 두번째입니다. 이 두가지 사건은 SJC사상 획기적인 일로 평가되며 그 뜻에 걸맞게 새로운 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
다카스기 이사장이 SJC 개혁을 이처럼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일 FTA를 추진하는데 SJC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미국의 나프타(NAFTA), 유럽의 EU 등 세계 경제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동북아 지역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장단점을 융합하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은 활발한 경제 인력과 신규설비가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발전된 기술이 있으며 경제력도 한국보다 앞서 있다. 이같은 점들을 서로 보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면 1억7000만명의 고객과 5조달러 규모의 시장을 지닌 지구촌에서 매력적인 곳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일 양국은 경제 활성화와 기업간의 협력 및 인재교류 확대로 새로운 발전의 기회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하는 동북아지역 중심국가 건설은 한일 FTA를 통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다카스기 이사장은 말했다.
다카스기 이사장은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과 외국계 기업인들의 오찬모임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일 FTA에 대한 평소의 뜻을 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모임을 마치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으로부터 ‘빨리 추진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반색했다.
한국의 문제점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부터 해외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여러 대책들이 세워졌습니다. 98년부터 2001년 사이에는 외국 투자가 계속적으로 늘어났지요. 하지만 이후 투자는 하락세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계 기업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왜 해외투자가 줄어드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여러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기본 인프라와 각종 인센티브 제도 등을 도입해 외국인 투자를 권유해왔지만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 기업들은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없다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솔직히 한국은 투자를 하면 이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평소 솔직하기로 소문난 그의 말투에는 거침이 없다.
“부품, 신소재 생산거점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희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외국기업은 한국으로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입니다. 단지, 달콤한 인센티브와 훌륭한 인프라만으로는 투자 유치가 힘듭니다.”
한일 FTA의 필요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그는 서슴없이 말한다.
“외국인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안정장치가 필요합니다. FTA를 체결하고 국가간 협력체계를 만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FTA만 생각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식민지 경험, 상이한 경제체제 등을 이유로 한·중·일의 FTA를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국가의 상황에 따라서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중국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측면에서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빈부격차도 심하며 역사적으로 중화사상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을 밑에 두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친밀하기 때문에 양국이 먼저 FTA를 체결한 후 나중에 중국도 포함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중화사상이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로 인한 문제는 어떻게 보는 것일까.
“한일 양국 정부 지도자들은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모색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습니다. 한일 월드컵, 문화교류 등 한국과 일본이 친밀해지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일본은 경제침체 등을 살펴보더라도 한국을 좋은 파트너로 삼고자 하는 분위기가 높습니다.”
“한일 국민교류의 해인 작년처럼 양국의 문화교류 행사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며 그 일환으로 오는 6월에 일본 스모단 방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일 FTA협정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줄곧 얘기하던 다카스기 이사장은 말머리를 SJC로 돌려 회원들이 과연 SJC에 만족하고 있는지, 정말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해 이를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42년 야마나시 출생 △66년 와세다대학 상학부 졸업 △66년 후지제록스 경리부 △75년 제록스 캐나다 연수 △76년 미국 제록스사 주재 △79년 후지제록스 경리부 계획과장 △85년 〃 영업계획부장 △92년 〃 경리부장 △96년 〃 재무부장 △98년 코리아제록스 대표이사 회장 △99년∼현재 한국후지제록스 대표이사 회장 △99년 제36회 무역의날 대통령표창 수상 △2000년 대한무역투자 진흥공사, 제5차 외국인 투자기업상 수상 △2001년 경제정의실천연합, 바른외국기업상 수상 △2001년 노동부, 신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 수상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