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 2인

 지금의 20대와 30대에게 ‘마징가’와 ‘독수리 5형제’는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일부는 이들 작품이 일본에서 제작된 사실을 알고 묘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찌됐든 일본 애니메이션은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정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인지 일본 애니메이션은 유난히 두꺼운 마니아층을 자랑한다. 동호회에서 정기 상영회를 열고 새로운 작품을 위해 현해탄을 건너는 열성파도 있다. 취미로 시작해 애니메이션 업체로 진출한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콘텐츠팀에 근무하는 신수경 대리(29)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 중학교때부터 틈틈이 모아온 CD와 책이 1000여점에 달하고 빌리거나 온라인을 통해 관람한 작품 편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화여대 작곡과를 졸업한 신 대리는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일본 음악의 계보까지 외우고 있다. 이를 ‘인정받아’ 지금은 네이트닷컴의 음악채널 기획자로 활동중이다.

 회사에서 나오는 도서 지원비는 모두 CD와 만화책을 사는 데 쓰고 추가적으로 월평균 10만원 정도를 새로운 작품을 구매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한다. 구입이 쉽지 않던 시절에는 용산을 찾거나 PC통신을 통해 교환하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인터넷경매 사이트나 절판된 작품만을 판매하는 사이트를 둘러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만화 같다’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산업은 이미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일본 김소월’로 통하는 미야자와 겐지의 탄생 100주년 기념작 ‘겐지의 봄’입니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자연스럽게 풀이한 작품이어서 더욱 애착이 갑니다.”

 애니메이션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인 신 대리는 “한국도 단순히 ‘어린 세대’만을 겨냥한 마케팅에서 벗어난다면 일본 못지 않은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3D 아바타 ‘레츠메이트’를 운영하는 쿼터뷰 신민섭 대리(29)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뿍 빠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애니메이션 CD 500여편을 소장할 정도다.

 신 대리는 가상 도시 속 아바타 채팅 솔루션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섬세한 배경 처리, 미묘한 색감의 차이로 표현되는 독특한 공간의 느낌 등을 3D 가상공간 설계에 반영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신 대리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것은 98년 초. 인터넷 서핑 중 발견한 일본문화 동호회에 가입하면서부터다. 환경문제와 관련한 정보도 애니메이션을 통해 얻는다는 그는 “환경문제를 시사하는 ‘나우시카’나 세계 2차대전으로 고통받는 어린 오누이를 표현한 ‘반딧불의 묘’ 등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에는 어떤 장르보다 진지한 삶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그의 걱정은 상상력 부족이다. 신 대리는 “기술력은 풍부하지만 훌륭한 시나리오나 기획과 연출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따끔한 일침을 잊지 않았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