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IT강국으로 이끈 초고속인터넷 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두루넷·온세통신 등 후발사업자들은 물론 초고속인터넷을 처음 주도한 하나로통신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IT산업의 근간인 초고속인터넷망에 균열의 조짐이 생기자 정부와 업계는 구조조정을 대안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논의방향이 사업자 구도에 집중돼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이 때문에 초고속망에 대한 접근시각과 인식 자체를 달리 가져가야 한다는 지적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심화되는 경영난=초고속망이 기간망으로 우뚝 섰으나 대가는 컸다. 출혈·과당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후발사업자들을 시작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이미 수년 전 드림라인이 구조조정을 겪은 데 이어 최근엔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온세통신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하나로통신 역시 적자누적에다 경영공백으로 초고속인터넷 개척자로서의 권위에 이미 흠집이 났다. 경쟁자들이 어려움을 겪자 KT 역시 이 사업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데이콤은 올해 40만 가입자를 목표로 초고속인터넷 시장에 본격 뛰어들 방침이며 지역 중계유선사업자(SO)들의 진출도 활발해 향후 경쟁환경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망 확충도 주춤=더 큰 문제는 망 확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영난에 직면한 사업자들은 투자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망 확충을 제쳐두고 가입자 유치에만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초고속인터넷을 사실상의 보편적 서비스로 보고 사업자들에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면단위 이하까지 전국 곳곳을 초고속인터넷망으로 깔려는 정부 정책에 먹구름이 끼었다. 업그레이드 투자를 통해 초고속망을 고도화한다는 구상도 힘을 잃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지금처럼 무분별한 가입자 경쟁에만 치중해서는 망 고도화 등 국가적인 IT 발전진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구조조정 제대로 해야=현 국면 타개의 대안은 구조조정이다. 정부도 인정한다. 정통부 관계자는 “사업자들이 난립해 출혈경쟁으로 점철되는 게 사실”이라며 “정부 입장에선 인위적인 구조조정보다 기업간 인수합병(M&A)이나 진입제도 개선 등을 통해 건전한 시장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진입이 자유로웠던 초고속인터넷 시장에 다소간의 장벽을 강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동원증권 양종인 애널리스트는 “이미 시장에서 구조조정은 시작됐다고 봐야 하고, 단지 속도와 강도가 현안”이라며 “유력한 M&A 주체로 거론되는 KT와 LG 등 사업자들의 움직임과 주무부처인 정통부의 정책판단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율적인 시장 구조조정은 통신사업자간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시기만 늦추는 결과를 빚고 있다.
실제로 인수 주체들은 두루넷·온세통신 등을 인수하려는 적극적인 노력보다는 경쟁자에 넘어가지 않도록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KT의 경우 제기될 독과점 시비도 걱정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초고속망이 사실상의 국가기간망이 된 상황에선 구조조정의 결과가 특정 사업자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는 관점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전체산업의 구도를 보고 업계 재편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