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은 늘 있었다. 들국화의 공연으로, 적지 않은 영화음악의 노래로 그는 지속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공백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들국화의, 전인권의 팬들은 성에 차지 않았다. 그가 10년 이상 ‘전인권의 신작’이라는 이름의 노래를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89년 2집 앨범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후, 무려 14년만에 전인권이 새 앨범을 가지고 돌아왔다.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가 실린 첫 솔로 앨범이 88년에 나왔으니 15년 동안 겨우 3장의 앨범을 발표한 셈이다. 이번 신작도 2월에 나온다더니 2개월이 지나서야 공개되어 팬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전인권의 목소리로 신곡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더욱이나 너무도 오랜만에 듣는 것이라서 ‘들국화세대’에게는 너무도 반가울 것이다. 전인권 음악의 핵심은 솔직히 가사나 곡조보다는 그것을 타고 후려치는 ‘보컬’이다. 80년대 말을 청춘으로 보낸 사람들은 그가 들려주는 살아 꿈틀대는 외침에 후련해했고 통쾌해했다.
하지만 신보에서 들려주는 전인권의 보컬은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우선 샤우트가 과거처럼 막힘없이 깨끗하게 치솟지는 않는다. 외침속에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큼 떨림과 걸림이 있다. 그렇다고 목이 상했다고 오해해선 안된다.
거기에는 관록이, 삶의 이끼가 끼었을 뿐이다. 김민기의 곡을 리메이크한 신보의 첫곡 ‘봉우리’에서 ‘봉우리로…’나 ‘여긴지도 몰라…’하는 대목,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번째 곡 ‘운명’에서 그가 내지르는 고음은 아주 꺼칠꺼칠하다. 나이가 든, 다시 말해 그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도리어 깨끗하지 않아서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다.
이 앨범은 따라서 ‘들국화세대’를 위한 위로의 서신이면서 동시에 ‘강해지고 뭉치자’고 하는 집합의식의 주문이다. 그에 앞서 이제는 전보다 팬들을 더 사랑한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사랑했던 모든 것들 바람 불어와/ 내 가슴을 두드리는데/ 노래하겠다 노래하겠다 노래하겠다….’
이 앨범에서 그는 김민기뿐만 아니라 신중현의 ‘뭉치자’도 불렀다. 그가 의식했든 아니든, 그의 음악적 토대가 ‘포크에 기초를 둔 록’임을 다시금 말해준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복고(復古)적이다.
80년대 음악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수록곡 전체가 친근하다. 프랑스 팝가수 미셸 폴라네프의 곡을 번안한 ‘다시 이제부터’를 위시해 ‘강해야지’ ‘내 노래 아는지’ ‘코스모스’ ‘내 심장은’ 등등 버릴 것이 없다. 일본 음악인이자 전인권과 쉰살 동갑내기인 하치의 곡 주조능력도 돋보인다.
속도와 감각에 감염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넋두리같은 늙은 앨범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처럼 철저히 한사람에게 중심이 쏠린 앨범이 있을까. 그래서 그는 아티스트다. 후배가수 강산에의 말처럼 “우리에게 전인권과 같은 가수가 있다는 것은 실로 축복”이다.
임진모(http://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