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고전명화가 DVD로

 공주와 신문기자의 풋풋한 사랑, 트레비 분수와 진실의 입, 헵번 스타일. 이 정도면 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어떤 작품인지 단번에 눈치챘을 것이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 주연의 로마의 휴일. 사춘기 시절 이 영화를 보며 누구나 한번쯤 사랑을 꿈꾸고, 아이스크림 입에 물고 스페인 광장을 활보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53년 개봉돼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는 로마의 휴일은 당시 청춘시절을 보낸 6070세대는 물론 3040세대들에게도 아련한 향수를 던져준다.

 이처럼 좋아하는 옛 영화가 있어도 어쩌다 TV에서 소개해주는데 만족해야 했던 영화팬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최근 고전영화를 DVD타이틀에 담은 작품들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기 때문. 로마의 휴일이 지난달 DVD타이틀로 출시된 것을 비롯해 투명인간, 길, 사랑은 비를 타고, 아마데우스 등도 최근 DVD로 선보였다. 게다가 워너, 유니버설 등 다수의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이 앞으로도 다양한 고전영화 버전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 동안 별다른 상영채널이 없어 그야말로 ‘옛날 작품’으로 치부된 고전영화들이 DVD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것의 상징인 고전영화가 그 대립점에 있는 첨단 미디어인 DVD를 통해 다시 태어난 것이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하지만 고전영화가 DVD로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디지털 복원기술, 풍부한 저장용량, 소장성을 기본으로 하는 DVD매체의 속성 등을 감안할 때 고전영화와 DVD는 궁합이 잘맞는 짝이다. 거기에다 당시에는 구경할 수 없었던 배우의 사진이나 메이킹 필름, 제작사 코멘터리까지 스페셜 피처로 만날 수 있으니 더할나위 없이 좋은 셈.

 로마의 휴일 DVD타이틀에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딸이자 프로듀서인 캐서린 와일러가 밝힌 회상기가 담겨져 있다. 아버지와 관련된 추억과 함께 영화 제작 당시의 상황을 들려준다. 또 로마의 휴일에 얽힌 사연 가운데 시나리오를 쓴 달콘 트럼보가 당시 공산주의자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바람에 40년이 지나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내용도 알 수 있다. 이밖에 필름 복구 과정, 티저 예고편, 포토 갤러리 등의 스페셜 피처가 제공된다.

 54년작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도 최근 DVD로 선보였다.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수상작이기도 한 길은 펠리니의 아내이기도 한 줄리에타 마시나가 젤소미나를 연기해 더욱 화제가 됐다. 서커스 유랑인의 세계를 동경한 펠리니가 거리에서 연기를 하는 연예인의 쓸쓸한 부평초 같은 생활을 묘사한 명작이다.

 투명인간은 70년이나 된 작품. 인체를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약품을 발명한 사나이가 자기 육체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이용해 온갖 악행을 벌이는 내용이다. 결론은 권선징악이지만 당시 SF적 착상의 기발함이나 소외된 인간의 고독을 그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아주 가까운 ‘신참’ 고전영화 DVD로는 개봉 20년밖에(?) 안된 아마데우스가 있다. 아마데우스는 84년 개봉돼 천재 악성 모차르트에 가려 언제나 2인자일 수밖에 없었던 음악가 살리에리의 인간적 고뇌와 욕망을 다뤄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밖에 벤허, 닥터 지바고 등은 이미 2001년 DVD로 선보여 인기 DVD타이틀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