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나 라이벌은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가전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맞수다. 양사의 치열한 라이벌 의식은 국내 가전산업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봇청소기에 얽힌 사연이다.
최근 LG전자는 국내 최초로 로봇청소기 상용화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아니 LG가 로봇청소기를 개발했다고”라며 의아해 했다. 그러나 가장 당황한 건 허를 찔린 삼성전자였다. 개발에서는 앞섰지만 상용화에서는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삼성은 그동안 로봇청소기 개발 사실을 공공연히 알려왔고 총괄사장이 직접 시연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배포하며 주도권 잡기에 골몰해왔다.
LG전자는 삼성의 공개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을 피해 ‘매복전’을 펼쳤다. 상용제품을 하루라도 먼저 시장에 내놓겠다는 작전이었다. 삼성의 로봇청소기 개발 동향을 시시각각 파악하면서 극비리에 같은 제품의 개발을 추진했다. 신제품 발표를 5개월여 앞둔 시점에 결혼한 LG의 한 연구원은 신혼여행지에서도 회사와의 업무처리 때문에 전화와 e메일에 시달려야 했을 정도다.
LG는 삼성보다 먼저 상품화했다는 승리감에 잠시 젖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상용화에 선수를 뺏긴 삼성이 그대로 물러설 리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조만간 서울 마포대교 북단에 대형 옥외광고판을 설치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마포대교는 LG 사옥인 여의도 트윈타워와 맞닿아 있는 위치다. 여의도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마포대교를 건널 때 대형 옥외광고판에 자연스레 눈이 간다. 트윈타워에 앉아서도 광고판이 선명하게 보인다. LG 임원의 불벼락이 떨어질 건 당연지사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LG 직원들은 고민이 많다.
그러나 두 회사의 라이벌 의식은 때때로 불필요한 심리전을 야기해 소모전을 낳기도 한다. 양사 관계자들은 신문기사에서 ‘삼성’과 ‘LG’ 중 어느 쪽이 먼저 표기되는지를 놓고 혈전을 벌이기도 한다. 사진 위치도 마찬가지다. 서로 자사 사진을 ‘왼쪽’에 넣어주기를 바란다. ‘오른쪽’보다 왼쪽에 위치한 회사가 좀더 앞서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다.
라이벌은 서로의 발전을 위해 신선한 자극이 된다. 혼자 달리는 마라톤보다 라이벌과 견제하며 달릴 때 좋은 기록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삼성과 LG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때로는 힘이 되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로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들은 국가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우리나라 대표기업이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세계적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본인들이야 피말리는 접전이겠지만 맞수가 있어 즐거운 것은 국가와 소비자들이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