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관심을 끌었던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장에 배순훈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가 임명됐다.
참여정부 출범 일성이 동북아중심이듯, 그 수장인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의 성패를 걸 듯이 동북아중심을 외치고 있다. 추진위를 이끌어가는 수장의 역할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 국가균형발전위와 함께 참여정부 3대 국정과제로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위원장의 인선이 늦춰진 것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 자리에 배순훈 교수가 임명되자, 대부분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더할 나위없는 적임자라는 평을 내놓았다. 외견상 그는 선비처럼 자상한 풍모를 가진 영원한 학자풍이다. 홍릉에 소재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오랜만에 만난 모습도 예전의 인상 그대로다.
그런 그가 한때는 과격한 느낌조차 드는 탱크사장, 탱크장관이란 별명을 갖기도 했다. 대우전자 사장 시절 탱크주의라는 TV광고 출연이 이유였다. 국민의 정부 국무회의와 정보통신부 기자실에서는 그를 탱크장관으로 지칭했다.
그러나 탱크장관은 단순히 TV광고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풍모에서는 학자풍이지만 소신과 관련해서는 탱크를 연상시키며, 방향이 서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말 그대로 탱크와 같은 추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IMF직후 집권한 국민의 정부가 초창기 밀어붙였던 빅딜이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입바른 소리를 하다 정통부 장관직에서 중도하차한 그다.
국민의 정부 최대 성과로 꼽히는 정보화나 IT코리아도 사실은 그에게서 시작됐다. 국민의 정부 첫 정통부장관이었던 그는 첫번째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당시 세계 22위였던 우리나라 정보화 수준을 5위로 끌어올리겠다고 보고했었다. 당시 그가 내놓은 것이 ADSL을 기반으로한 브로드밴드 네트워크와 양방향 TV. 양방향 TV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배 위원장은 “DJ의 의지와 후임 장관들의 열정으로 당시 구상은 IT강국이란 기대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코리아=IT강국’이란 등식의 밑바탕이 됐던 ADSL은 당시만해도 회의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배 위원장은 “그당시 HP회장이 된 칼리 피오리나를 만나 브로드밴드 네트워크를 화제로 대화한 적이 있는데 피오리나는 의문을 표시하곤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 2월 보스턴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열린 ‘아시아 비즈니스 콘퍼런스 2003’에 ‘한국의 IT혁명과 미래 발전상’이란 주제로 기조연설했는데 참석자의 반응에서 우리의 IT성공이 느껴졌다”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성취감이 엿보인다.
통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대우전자 사장으로 재직했던 그가 ADSL과 같은 인프라를 직시한 통찰력은 국제적인 그의 활동 반경에서 비롯됐다.
“96년경 대우전자가 세계적인 가전업체인 프랑스의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ADSL을 눈여겨 봤었고 이를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구체화했다”고 부연설명했다.
브로드밴드를 적시한 그의 통찰력에서 엿볼 수 있듯이 배순훈 위원장은 화려한 경력을 가진 우리시대 최고의 스타엔지니어로 꼽힌다. 민·관·학·연을 두루 섭렵한 몇 안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경기고, 서울대 공대, MIT공대(박사)라는 엘리트 코스를 거쳐 KAIST 초대교수, 대우국민차 사장, 대우전자 사장, 정통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특히 그는 80년대 초반 스탠포드대와 MIT공대 객원교수로도 활약했고 9·11테러로 무너졌지만 세계무역센터 건물에도 그의 설계(에어컨디셔너)가 묻어 있다.
그의 대한항공 마일리지 200만마일은 동북아중심추진위 위원장으로서의 자격을 대변한다. 세계를 대상으로한 그의 인사파일에는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거칠 것이 없다.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첫번째 업무가 투자유치인데 현재 정부는 세금감면, 캐시그랜트 등 제도개선만 이야기되고 있다”고 전제하며 “문제는 휴먼네트워크”라고 위원회의 일차적 활동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국내에 있는 외국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 대내외에 과시하고 해외 유수 기업과의 대면접촉을 통해 끌어들이겠다”며 그가 가진 휴먼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할 의향을 비추고 있다.
또 “현재 위원회에는 휴먼네트워킹이 탄탄한 분들과 제도개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상적인 팀구성이 이뤄져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동북아중심추진위원회의 기본골격에 대해서는 우리가 최고라고 평가받는 IT, 이에 바탕을 둔 지식산업,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하겠다고도 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 IT이고 IT는 모든 산업에 연결될 수 있다”며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우리의 IT인프라와 자산을 인식하고 한국을 동북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배 위원장은 동북아경제중심이란 용어가 가져온 국내외적인 부정적 평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못박았다.
“동북아경제중심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중국-한국-일본을 네트워크로 연결함으로써 윈윈한다는 게 대전제이며 그 기본축인 IT는 인프라스트럭처이기 때문에 프로젝트화할 경우 인접국가를 연결하는 거대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힌다.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이 중심을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 ‘구호성’으로 치우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동북아경제중심이 동북아의 우두머리라는 오만한 의미가 아닌 허리를 의미한다”며 우리의 문화적 특성에 맞는 역할이라고 잘라 말한다.
배 위원장은 “월드컵을 통해 세계의 호평을 받았던 민족성이라면 얼마든지 동북아경제중심을 수행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것”이라며 “월드컵에 보여준 신바람문화와 세계시민교육을 통해 동북아경제중심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기본 구상을 밝혔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선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은 이공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공돌이라는 막연한 이미지, 수학교육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공계를 기피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를 박차는 것”이라는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엘리트도 이공계 출신이 대다수를 점할 것”이라며 젊은이들의 현명한 선택을 당부했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
△43년 서울 출생 △61년 경기고 졸 △65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 △70년 MIT공대 박사(기계공학) △69년 미국 BORG-WARNER사 수석기사 △72∼76년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교수 △77년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79년 대우조선 부사장 △80년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장 △80년 대우전자사장 △83년 스탠포드대 객원교수△84년 MIT대 객원교수 △85년 대우기전·대우자동차부품 사장 △90년 대우조선사장 △91년 대우전자사장 △95년 대우전자 회장 △95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98년 대우그룹 프랑스지역본사사장 △98년 제4대정보통신부 장관 △99년∼현재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 △2000년 리눅스원 회장 겸 이사회 의장 △2002년 AMD(미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업체) 소비자 자문이사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