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부가 온라인게임 관련 ‘기업허가제’ 도입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중국 온라인게임 산업구도를 중국기업 위주로 재편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그동안에는 게임개발력은 물론 10만명을 훨씬 넘어서는 동시접속자를 수용할 수 있는 서버기술과 운영노하우가 부족해 외산 온라인게임에 시장의 대부분을 내줬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췄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는 그동안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해온 국내기업들에 있어서는 중국시장에 대한 환상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기업허가제’는 지역별로 온라인게임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기업을 제한적으로 허가하겠다는 것이 골자인 만큼 이 제도가 도입되면 앞으로 국내기업들의 중국진출이 매우 까다로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에 진출했던 국내기업과 온라인게임이 중국에서 퇴출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배경=중국정부가 이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임에 따라 게임을 단순한 ‘유희’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최근 ‘미르의 전설2’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한중 양국 기업간의 분쟁은 그동안 게임산업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놓고 이리 저리 재온 중국정부가 이같은 방안을 내놓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미르의 전설’ 현지서비스 대행업체인 성대가 한국기업이 계약파기를 선언한 것을 빌미로 중국 게임업체 및 정부관료들의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면서 현재 중국 내에 외산 게임 배척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미르의 전설2’를 둘러싼 분쟁 자체를 한국기업이 부린 횡포에 맞서 자사가 싸우고 있는 것으로 호도해 온 성대는 최근 열린 문화부와 네트워크문화처 및 중국 게임관련 업체들간의 회의석상에서도 “중국기업들이 그동안 한국기업에 많이 당해왔다”며 한국기업들이 중국에 들어오는 것을 정부가 심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내에서 온라인게임 등급분류제를 시행한 것도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를 계기로 중국정부의 게임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것. 중국정부는 국내에 온라인게임 등급분류제 시행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2월 문화부 산하에 게임과 PC방 관련업무를 전담할 네트워크문화처를 설립하고 온라인게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며 온라인게임 등급분류제를 준비해 왔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베이징에서 일어난 PC방 화재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PC방을 모두 폐쇄하고 새로운 PC방 이용규정에 따라 다시 허가를 내주는 정돈사업을 단행하며 온라인게임에 강한 규제를 실시할 예정임을 시사한 바 있다.
◇국산 온라인게임 중국진출 현황=중국에는 현재 21개의 국내기업이 진출, 27개 정도의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며 중국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제이씨엔터테인먼트와 액토즈소프트가 각각 ‘천년’과 ‘레드문’을 수출한 데 이어 액토즈소프트의 ‘미르의 전설’ 시리즈는 현지시장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판타그램의 ‘샤이닝로어’와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및 웹젠의 ‘뮤’, 나코인터렉티브의 ‘라그하임’ 등 기대작들이 속속 진출했다.
올해 들어서도 엔씨소프트가 ‘리니지’를 본격 서비스하기 시작한 것을 비롯해 한빛소프트가 ‘서프’와 ‘위드’를 수출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온라인게임 대부분이 현지 서비스에 나섰다. 이들 국산게임은 수적인 면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기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파장 및 전망=그러나 최근 중국정부가 온라인게임 관련 ‘기업허가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정함에 따라 이처럼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국산 온라인게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우선 현지 서비스 대행사를 통해 이미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업체들은 현지 파트너가 사업허가를 받지 못하면 중국에서의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 그럴 경우 사업허가를 받은 업체와 상당히 열악한 조건에서 다시 계약을 체결하거나 아니면 짐을 싸야만 하는 결과도 맞을 수 있다.
새롭게 중국에 진출하려는 업체들도 제한된 현지 업체들과 수출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진출하더라도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크게 줄어들 것이 뻔하다.
또 중국의 지역별 사업자가 각기 다를 경우 국내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더라도 서비스할 수 있는 지역에 제한을 받게 됨에 따라 다른 지역에도 서비스를 하려면 해당 지역 사업권을 확보한 현지 업체와 또다른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럴 경우 수출계약 체결에 있어 중국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계약금이나 로열티 규모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형태의 수출은 결국 국내기업들이 지난 수년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가며 쌓아온 온라인게임 개발기술과 서버운영 노하우 등을 중국기업에 헐값에 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어떤 형태로든 중국기업들이 주도권을 쥐는 형태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성대의 경우는 한국기업들을 대놓고 비난하고 있는 한편으로 분쟁이 된 ‘미르의 전설’을 모방한 ‘신 미르의 전설’이라는 게임을 개발, 28일 클로즈드 베타서비스에 나서고 내달 24일께부터는 오픈베타서비스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이미 상당수의 중국업체들이 그동안 확보해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온라인게임을 속속 개발, 그동안 외산게임에 내준 중국시장 탈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중국정부 및 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들도 이렇다할 대응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미르의 전설2’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양국 기업간의 분쟁도 국내 기업간에 집안싸움만 펼치는 꼴로 전락, 최근 중국에서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로서는 아직 중국 문화부의 방침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데 일말의 기대를 걸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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