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위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비심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가전부문을 비롯해 이동통신·반도체 등 모든 산업분야가 급속히 얼어붙어 빈사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위기극복을 위한 업체 스스로의 자구책 마련과 함께 거시적 차원의 정책적 대안마련이 시급하다.
◇위축되는 내수경기=가전부문의 경우 이라크전과 국내 내수경기 위축의 영향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매출이 크게 줄고 재고량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은 이러한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3월 산업생산지수는 2월의 10.2% 증가율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5%로 집계됐고 3월의 도소매판매가 전년동월비 3.0%나 감소했다. 소비지수는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지난 1분기 기준으로 도소매판매지수 역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가전업계는 봄철 성수기를 맞았지만 ‘성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휴대폰 업계도 비상이다. 용산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침체에 따른 유통업체의 고충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오프라인 실물경기를 반영하는 용산 등 전자상가의 체감경기는 이미 영하로 떨어진 지 오래”라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모션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오르지 않아 고심하고 있으며 일부 매장은 폐업이나 업종을 이전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SARS로 설상가상=국내 IT업체들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부진이 내수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이라면 이라크전쟁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해외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29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스로 인한 직접적인 수출차질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업체들의 해외마케팅에는 상당할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특히 사스 확산지역인 중국·홍콩·대만·싱가포르 등에 대한 한국의 수출비중은 27.4%에 달해 사스 여파가 장기화할 경우 심각한 수출차질이 예상된다.
◇대응방안은 없나=업계에서는 정책적 차원의 대안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IMF때처럼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전업계는 지난해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특소세인하’를 이번에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지난해 프로젝션TV와 PDP TV·에어컨 등에 대해 특소세를 인하했을 때 20% 정도가 ‘특소세인하’로 인해 전자제품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품목은 첨단기술이 적용된 제품인데다 대외경쟁력도 높은 것들이어서 관련산업의 부양효과가 높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최근 들어 업체들의 경영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통신산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정책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동통신의 경우 단말기 보조금 예외품목 지정이 늦어지고 있고, 유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갈 정도인데도 구조조정이 늦어져 통신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번 통신사업자 경쟁력 제고방안 마련을 위한 회의에서는 주로 후발사업자의 애로사항 등이 제기됐는데 전반적인 이통사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마케팅의 모티브를 마련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그 대안으로 번호이동성을 들 수 있으며, 번호이동성이 전제되지 않고 보조금만 허용된다면 결국 사업자를 모두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통신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처럼 정리돼야 할 정책들이 정리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급격히 떨어졌다”며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정책들이 정리돼야 기업 입장에서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올해로 시한이 만료되는 조세특례제도를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 정부의 방침이 비과세나 감면을 줄여 세수를 늘린다는 것이지만, 기업여건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