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가 상계관세 실사를 이유로 우리 주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해 속속들이 조사, ‘정보유출’ ‘저(低)자세 외교’라는 파문이 일고 있다. 실사 대상이 됐던 각종 국책사업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차기 기술개발 프로젝트인데다 하이닉스 지원과는 연관성이 없는 것도 상당수여서 우리 정부가 미국측의 무리한 요구까지 순순히 수용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실사 대상을 제소자인 마이크론이 직접 지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차세대 연구개발 정보를 빼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쏠리고 있다.
◇국책프로젝트 핵심 내용 드러나=이번에 실사를 받은 연구사업단은 미 상무부에 관련사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데 필요한 세부 연구내용을 제공했다. 사업단들은 그동안의 연구가 하이닉스의 D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원천기술 개발이었다는 데 초점을 맞춰 연계점이 없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사업단이 추진중인 대다수 과제가 2000년 당시 상용화한 기술이 아니라 차세대 기술이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이들 사업단은 10년 후를 예측해 국가가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연구에 집중했으며 이번에 이런 내용이 미국측에 공개된 것이다. 물론 과기부와 산자부, 외통부 등 관련 부처는 미 상무부와 비밀유지계약(NDA:Non Disclosure Agreement)을 하고 이들 과제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사태를 덮으려 하고 있다.
◇미국의 숨겨진 의도=사실 하이닉스가 미국정부로 부과받은 잠정 상계관세 57% 중 정부가 지원한 연구개발(R&D)쪽 관세율은 0.14%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무부는 이번 2주일간의 실사중 상당수를 차세대 국책과제와 연구기관에 집중했다.
이번에 실사를 받은 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은 물론 일본, 독일 등 세계 각국은 산업육성을 위한 국책과제를 진행하고 있다”며 “사업단에 대한 실사는 미국의 월권”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최근 2004년도 나노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을 8억400만달러로 책정하는 등 막대한 규모의 국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나노 스케일 측정용 기계장치를 포함해 나노 스케일 제작연구, 나노기술 전문인력 양성에서 산업계를 나노기술로 유도하는 데 이들 예산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의 적극 대처 절실=연구계와 업계는 정부의 소극적인 입장 표명과 당장의 현안만 해결하려는 근시안적 대처를 지적하고 있다. 정부측이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아닌 저자세로 그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학계는 과학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의 핵심기술을 노출하는 것은 국가의 흥망성쇠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며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례가 받아들여질 경우 각종 국책사업과 자금들이 모두 외국 정부의 실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돼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가 향후 우리 발목을 되잡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실사가 인수협상을 내세워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정보를 속속들이 캐간 것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면서 “미 상무부는 향후 우리나라의 다른 산업에 대한 통상압력에도 사용할 여러 근거들을 파악해갔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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