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무역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김모씨(38)는 요즘 퇴근하면 어린 아들과 나란히 앉아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것이 취미가 됐다. 집 안에 PC는 한 대 밖에 없지만 부자간 컴퓨터 사용권을 두고 다투는 일은 없다. 하나의 PC본체에 두 대의 모니터·키보드를 연결해서 아들과 아버지가 별도의 컴퓨팅 작업을 하는 멀티유저 PC환경을 지난달 구축했기 때문이다.
PC 한 대를 최대 4∼5명까지 동시에 사용하는 멀티유저 PC환경이 최근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기존 PC에 일인당 20만원 상당의 멀티유저 키트(전용SW+VGA카드+USB스테이션)를 장착하고 사람 수대로 모니터·키보드·마우스를 연결하면 멀티유저 PC환경이 구축된다.
이 기술은 개인책상 위에서 남아도는 컴퓨터 자원을 사무실 또는 가족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경제성을 인정받아 현재 대만·중국·프랑스·브라질 등지에서 신규 PC판매량의 4∼7%를 점유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서는 초중고 전산실의 노후 PC기종을 값싸게 업그레이드하는 대안으로 지난해부터 멀티유저 PC환경이 도입됐는데 구형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그대로 쓸 수 있어 교육계의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올들어 맥스미디어코리아, 디지털월드, 이노텍 등은 일반 소비자용으로 값싼 멀티유저 키트를 출시해 소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맥스미디어코리아는 올해는 100여개 초중고교에 멀티유저 PC환경을 구축하는 한편 이달부터 대당 20만원의 DIY 멀티유저 키트를 출시, 연말까지 3만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월드도 홈쇼핑 채널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제품판매에 들어갈 방침인데 멀티유저 키트가 중고 PC를 사는 것보다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나 PC주변기기시장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당연히 PC제조업계 입장에서 멀티유저 PC환경은 반갑지 않은 기술변화다. 삼보, 현주컴퓨터는 매출감소를 우려해 멀티유저 PC환경을 애써 무시해왔고 삼성전자는 교육용 PC시장의 번들상품으로 슬그머니 출시한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대만 에이서는 여러 명이 동시에 쓸 수 있는 멀티유저 PC를 다음달부터 양산해 세계 PC시장에 ‘수량파괴’의 포문을 열어제칠 계획이다.
맥스미디어코리아의 유성경 사장은 “한 대의 PC를 공유하는 멀티유저 환경이 확산되면 1인 1PC의 개념도 흔들릴 것”라면서 “오는 2005년까지 국내서도 멀티유저 PC가 최소 5% 점유율을 차지할 전망”이라고 장담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