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을 만드는 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윤리적 혼란에 부딪히곤 한다.
자신이 개발하는 로봇기술이 언젠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을 만드는 데 기여할지도 모른다는 해묵은 불안감 때문이다. 물론 로봇과학자들이 고의적으로 터미네이터 같은 로봇괴물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누군들 자기가 사는 세상이 파괴되길 진심으로 바라겠는가. 하지만 숱한 공상과학영화에서 주인을 공격하는 로봇 이야기에 중독된 대중들은 로봇기술의 미래에 대해 의혹에 찬 눈길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로봇시대가 현실화되면서 미국, 유럽 국가에선 로봇기술의 오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같은 반로봇전선에 환경단체나 유나바머(unabomber) 같은 반문명주의자뿐만 아니라 저명한 과학자까지 로봇기술의 잠재적 위험성을 거론하고 나서 그 심각성이 더해지는 상황이다.
컴퓨터 과학자로서 전설적 인물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빌 조이는 지난 2000년 4월 발표한 에세이 ‘왜 미래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에서 유전공학, 로봇공학, 나노기술의 발전에 따라 2030년이면 로봇이 인간지능을 뛰어넘고 스스로 복제능력까지 갖춰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요 IT업계의 거물이 첨단로봇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기술개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자 그 파장은 매우 컸다. 빌 조이의 주장은 분명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으며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인류를 위협할 기술이라면 애당초 개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우리 한국인이 그의 묵시록적 예언에 주눅들어 반과학, 친생태적 세계관으로 무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버섯구름이 솟은 지 반세기가 넘도록 인류는 지구를 수십번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의 공포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등 핵강대국은 세계평화를 위해 자신들이 보유한 핵폭탄을 자발적으로 완전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바가 없다. 오히려 강대국의 핵무기는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도구요 다른 중소국이 보유하면 대량살상무기(WMD)라는 이중적 잣대를 고수하고 있다. 로봇기술이 언젠가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으로 바뀔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해도 한국이 지금부터 로봇개발에 도덕적 부담을 떠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을 위협할 자기복제형 로봇기술은 십중팔구 미국에서 등장할텐데 인류를 위해 로봇개발을 포기하는 모범도 미국이 먼저 보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포기할 기술력도 변변히 갖추지 못한 주제에 외국 과학자의 호들갑에 우리도 특정로봇분야 개발중단을 선언하는 웃기는 상황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과거 노태우 정권이 서두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우리의 국익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