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The News]최규학 한국소보원장

 소비자는 더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닌, 자기권리를 적극적으로 찾는 주체다. 기업도 소비자 문제에서 방어적 입장이나 소극적인 자세를 벗고 보다 적극적이고 투명하게 소비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시대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정부 역시 소비자 피해에 대한 사후대책보다는 사전예방에 주력해야 한다. 소비자 피해 해결 문제를 거시경제 정책이나 경제활성화의 한 축으로써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소비자 보호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소비자, 소비자 보호, 소비자 문제는 경제정책의 일환이자 복지정책의 하나이며 나아가 종합적인 행정정책입니다.” 우리나라 소비자 보호 정책의 총본산인 한국소비자보호원 최규학 원장(64)의 지론이다.

지난 2001년 원장 취임 이후 그는 소비자 문제에 대한 보다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에 따른 정책개발을 재차 강조했다. 단순피해구제, 예방업무를 넘어 소비자 보호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이 정책이 우리 사회의 경제와 행정, 복지 업무의 한 축으로써 원활하게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소보원의 책임이며 소비자 정책이라는 것이다.

“원장 부임 전에는 단순히 ‘기업에 비해 불리한 소비자들의 입장에 서서 소비자 중심의 피해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임해 보니 소비자 문제는 외부에서 보던 것과 달리 훨씬 광범위하고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과거와 달리 소비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정책이야말로 사회 복지증진이라는 차원에서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야할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마다 소비자 피해 상담은 계속 증가해 지난해에는 연 40만건을 넘어섰다. 특히 TV홈쇼핑, 인터넷쇼핑몰, 택배 등 신업종과 신제품 관련 피해는 100% 이상씩 증가했고 의료, 법률 등 전문 서비스에 대한 피해 상담도 급증세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제도와 관련 법률은 소비환경과 시대변화를 적시에 따라가지 못해 대량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후에나 개정법이 마련되고 피해구제 등 수습에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올초 수백억원대의 피해액과 수천명의 피해자를 낳은 인터넷 쇼핑몰 ‘하프플라자’ 사기사건도 사실 몇달 전부터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직접적인 고소·고발이 없거나 피해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어떤 방법으로든 중간에서 영업을 규제할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최 원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안타까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처음 피해상담이 접수되고 건수가 급증한 초기부터 좀 더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지불 후배송을 근간으로 하는 전자상거래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며 ‘인터넷 쇼핑몰 거래안전 확보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피해예방을 위한 정책대안을 마련해 관계기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소보원 원장 취임전 그는 국무총리 행정조정실과 국무조정실에서 15년 동안을 근무하며 중복 법령 문제와 업무영역 조정 등 부처간 돌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그는 행정조정 전문가로도 통한다. 물론 소비자 정책 분야와 인연을 맺은 것은 행정조정실과 국무조정실 근무 이전부터다.

 지난 67년 재무부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한 그가 소비자 분야에 첫발을 디딘 것은 77년 경제기획원 경제법령정비반장 재직시절이다. 이때 소비자보호법이 처음 만들어졌고 그는 법률 초안 작성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소비자정책 분야에서 그는 ‘원로급’인 것이다. 그는 이 때를 “소비자란 말이 생소하던 시절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초법안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던 시절”로 회상하고 있다.

소보원 원장 취임후 가장 먼저 착수한 과제는 ‘급변하는 소비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소비자보호 패러다임 구축’과 이를 위한 ‘소비자정책 중장기 발전방안’의 마련이었다. 그동안 추진해온 소비자 의식개혁 프로그램과 기업의 자율 시정기능 강화, 어린이 안전 사고율 저감 대책, 지방 소비자보호를 위한 지역별 소비생활센터 설치 등은 바로 소비자 보호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사례다.

특히 올해는 소비자보호 관계 법령을 선진화하고 체계화시키는 법령정비사업과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상품 비교테스트를 중점 추진할 계획이어서 벌써부터 업계와 소비자 단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 원장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소비자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개별 법령간 상충되거나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86개 소비자법령 정비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또 “소비자의 의식을 선진화하고 나아가 소보원의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해 소비자에게 보다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기존의 상품비교테스트를 확대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연 45만건의 소비자 상담 내용을 간추려 보면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의 느끼는 불편과 피해,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보원은 소비자로 대변되는 국민의 고충을 일선에서 부딪치며 해결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최 원장 역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직원들이 묵묵히 국민들의 불편이나 피해를 내 일인양 성심성의껏 처리하는 것을 보고 국민과 함께 하는 대표 기관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며 소보원 업무와 직원에 대한 애정도 감추지 않았다.

“재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가 주도했던 소비자 정책은 이제 정부·기업·소비자의 역할 재정립을 통해 재조명과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법령과 제도를 정비해 일관된 정책 추진이 필요하며 기업은 타율적인 규제대상에서 벗어나 소비자 중심의 시장 질서를 자율적으로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또 소비자도 수동적인 보호 대상이 아닌 스스로 권익을 주장하고 정부정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인 행동 주체로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합니다.”

소비자 문제는 이제 국제적 이슈로 대두돼 있다.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소비자 보호의 국제 공조가 중점 논의됨에 따라 이를 국내에서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것도 정책적으로 큰 관심사가 됐다. 그래서 최원장은 국가로부터 소비자 행정을 위임받은 소보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막중한 책임감을 인식하고, ‘하프플라자’사건처럼 서민을 괴롭히는 각종 부당거래 행위 근절에 노력할 것입니다. 또 열악한 소비환경에 처해있는 지방소비자들을 위한 소비자보호 활성화를 추진함으로써, 소보원이 명실상부한 전국적인 종합 소비자보호 추진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소비자 문제를 바라보는 거시적 시각을 갖추고 국가의 경제 행정 복지 정책의 큰 틀 속에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최규학 원장과 한국소비자보호원 역할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9년 전남목포 출생 △58년 목포고 졸업 △63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65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67∼77년 재무부 행정서기관 △78∼83년 국무총리 행정개혁위 서기관 △83∼89년 국무총리행정조정실 부이사관 △89∼93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이사관 △93∼99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및 국무조정실 관리관 △99∼2000년 국가보훈처장 △2000∼2001년 대통령 복지노동수석 △2001년∼현재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