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에 이어 한때 ‘297세대’란 용어까지 회자된 적이 있다. 70년대 태어나 90년대 대학에 들어가고 20대인 세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297세대는 이제 30대 전후에 걸려있다.
297세대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여럿 있다. 소위 운동권세대의 끝자락에 걸려있고 취업에 임박해 IMF를 맞은 비운의 세대다. 그들은 서태지의 ‘하여가’를 부를 수 있고 구성진 ‘낭만에 대하여’도 안다. 그들은 PC게임 ‘삼국지’에 열광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삼국지는 일본 코에이가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80년대 말 우리나라 PC시장이 8비트에서 16비트로 급변한 이유로 16비트에서만 즐길 수 있던 삼국지를 들기도 한다.
우리 문화 깊숙이 파고든 일본 문화코드의 선봉에 이런 일본 게임들이 있다. 캡콤이란 일본 게임업체는 몰라도 ‘스트리트파이터’는 안다. 스퀘어는 몰라도 ‘파이널팬터지’ 마니아가 상당수 존재한다. 되짚어보면 일본 문화를 세계에 심어놓은 첨병이 바로 일본 게임들이다. 지금도 전자오락실에 가면 심심찮게 오락기 화면에 일본어가 쓰여있거나 일본어가 튀어나온다.
그래서 일본을 ‘게임왕국’이라 부른다. 실제로 일본은 90년대 가정용 게임기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평정했다. 닌텐도의 슈퍼패미콤과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PS)이 선봉에 섰고 ‘세가’ ‘남코’ ‘스퀘어’ ‘캡콤’ ‘코에이’ 등 게임 소프트웨어(SW) 업체들이 몰려다니며 깃발을 꽂았다.
그 게임왕국이 90년대 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 게임업체가 미국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들은 그동안 해외시장보다 돈 벌기 편한 일본 장에 안주해 왔다. 일본 불황과 더불어 97년 이후 일본시장은 축소되고 반대로 게임의 대작화 진전되고 제작비가 급상승하는 시련을 겪었다. 반면 미국 업체들은 미국시장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공략해 왔다.
결과는 게임SW 전문업체 순위에서 명확해진다. 1∼4위에 미국 EA, 액티비전, THQ, 테이크2가 올라 있다. 5위에 고나미가 겨우 명함을 내민다. 그나마 매출도 일본시장 편향이 심하다. 일본은 특히 자금·브랜드·마케팅에서 밀린다.
일본 게임업계가 최근 옛 명성 회복에 나서고 있다. 우선 고나미가 허드슨, 겐키 등 게임업체에 출자해 덩치를 키우고 있다. 에닉스와 스퀘어가 합병, 두 번째 카드를 들었다. 여기에 남코가 세가에 힘을 합치자고 제안하면서 세 번째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모두 자금·브랜드·마케팅에서 힘을 모으기 위한 움직임이다.
일본 게임업계의 재편은 미국·유럽시장에 대한 적극적 공략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전세계 게임시장 패권장악을 위한 미국·유럽·일본간 격전 예고편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삼국지’ 등을 통해 한국의 297세대에게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일본 게임업계가 지금 왕년의 화려했던 게임왕국을 탈환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