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대의 히트품인 휴대폰을 놓고 한일간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완성품에서는 사실상 한국의 압승으로 판가름이 났다. 그러나 모뎀칩을 제외한 LCD 등 주요 부품과 소재에서는 일본의 확실한 우세가 지속되고 있다. 부품왕국 일본은 휴대폰 완성품에서는 졌지만 부품에서 만큼은 결코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각오다.
최근 휴대폰이 컬러폰에서 카메라폰이나 동영상폰으로 세대교체가 되기 시작하면서 양국간 경쟁은 새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업체들이 완성품에서 승리를 바탕으로 부품주도권 회복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응한 일본의 반격 또한 만만찮다.
한국이 TFT LCD를 무기로 일본의 안방이었던 휴대폰 액정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고 선언하자 일본은 카메라모듈과 이에 적합한 알리법 공법의 PCB로 한국점령을 시도하고 있다. 카메라왕국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휴대폰용 카메라모듈에서는 한국업체들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TFT냐 STN이냐, 아니면 유기EL이냐=지난해까지 휴대폰용 LCD의 91%를 차지한 STN LCD 제품에서는 한국의 삼성SDI와 일본의 세이코엡슨사가 치열하게 1, 2위를 다투고 있다. 양사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23.6%, 22.4%로 차이가 1% 안팎에 불과하다. 삼성SDI는 중국 동관의 LCD모듈 라인을 증설하는 한편 FS LCD, 유기EL 등 동영상 지원이 가능한 차세대 제품을 출시, 휴대폰용 LCD 시장 1위를 고수할 방침이다.
또 최근 카메라폰, 3G폰 출시에 따라 채용이 크게 늘고 있는 소형 TFT LCD분야에서도 국내업체들이 일본업체들의 독주를 저지할 태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1세대 라인을 소형 LCD 라인으로 전환한데 이어 올해 하반기에도 1개 라인을 소형 라인으로 전환, 생산량을 지난해 말 생산량의 4배 수준인 400만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LG필립스LCD는 소형 TFT LCD 패널 생산을 확대, LG이노텍이나 현대LCD에 공급하는 식으로 휴대폰용 LCD사업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일본의 샤프는 오는 6월부터 2인치 기준으로 월 400만개의 시스템 LCD를 생산할 수 있는 전용 공장을 가동하는 등 소형부문에서는 일본이 지속적으로 이니셔티브를 확보한다는 입장이다.
저전력, 빠른 응답속도 등의 특성으로 휴대폰 LCD에 최적으로 평가받는 유기 EL분야에서도 한일전은 뜨겁다. 삼성SDI는 지난 1분기까지 256컬러 제품만을 양산했으나 올해 2분기에는 에어리어컬러, 6만5000컬러 등을 새로 선보이고 라인업을 크게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 올해 유기EL 사업에만 1040억원을 투자해 오는 2005년에는 유기EL 연매출액 9000억원, 세계 시장점유율 32%로 1위에 오른다는 전략이다.
LG전자는 올해 말부터 휴대폰용 유기EL 제품 생산에 착수할 예정이며 코오롱, 오리온전기, 현대LCD 등도 연내 사업화를 계획중이다. 이에 맞서 일본의 산요는 미국 이스트먼코닥과 손잡고 최근 유기EL 패널의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두 회사의 합작사 SK디스플레이는 월 2인치 유기EL 10만개를 만들 수 있는 유기EL 패널을 생산한다. 또 산요의 자회사인 돗토리산요도 200억엔을 투자해 올해 안에 공장을 가동, 월 100만장의 패널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밖에 파이어니어, TDK, 도시바, 소니 등도 유기 EL사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등 유기EL 분야에서도 치열한 한일전이 펼쳐지고 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PCB, 한국의 빌드업이냐 일본의 알리브냐=한국의 빌드업 공법과 일본의 알리브 공법이 휴대폰용 인쇄회로기판(PCB) 시장을 놓고 치열한 시장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력 대비 저렴한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 빌드업 제품이 휴대폰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고 일본 알리브는 지난 96년 첫 선을 보인 이후 자국 시장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일본 CMK와 마쓰시타는 기술협력을 통해 개발한 알리브 공법 기술이 일본 휴대폰 시장에서 신뢰성을 입증받음에 따라 삼성전자·LG전자 등 업체를 대상으로 마케팅에 들어가는 등 한국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 마쓰시타 한국법인인 파나소닉인더스트리코리아 마츠모토 세츠이치 사장은 “일본 휴대폰 시장에서 알리브 공법을 이용한 기판시장 점유율이 약 30%에 달할 정도로 수요가 늘고 있다”며 “알리브 기판에 관심을 보인 한국업체를 대상으로 판매에 나선다”고 말했다.
특히 세트업체가 카메라폰·TV폰 등을 주력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선 기존 8층짜리 빌드업 기판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10층 이상의 기판을 필요로 하는 데 마쓰시타측은 이러한 수요를 알리브 기판으로 대체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는 알리브 공법이 임의 층간에 IVH(Interstitial Via Hole)를 형성함으로써 회로설계 자유도와 부품실장 밀도가 빌드업 공법보다 대단히 높은 데다 반도체를 베어칩 상태로 실장할 수 있어 휴대폰의 소형화 요구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 빌드업 기판 대비 알리브 기판 공급가격이 약 15% 비싸 한국 업체들이 사실상 채용을 꺼려왔지만 1년 후면 기술 혁신으로 생산원가를 절감함으로써 대등한 가격대에 공급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한국시장 진출을 부추기는 데 한 몫하고 있다.
마츠모토 사장은 “상품의 기획 및 연구 단계부터 적극 참여, 고객의 상품성을 높이는 ‘테크노스토리’ 전략을 펼친다”며 “특히 개발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본사와 한국 업체간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 구축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텍 조래을 이사는 “국내 대다수 업체들이 휴대폰용 빌드업 기판 시장에 주력하고 있는 데 일본 알리브 공법이 기존 기술적인 일부 단점을 극복하고 국내에 진출한다”며 “한일간 기판 기술 자존심을 건 치열한 시장경쟁이 예측된다”고 말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카메라부품 종속이냐 수입대체냐=카메라폰 판매가 전체 휴대폰의 10%(월 평균 100만대)까지 증가하고 있지만 CMOS 센서, 모듈, 렌즈 등 촬상 핵심 부품은 대부분 수입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시판중인 10만화소(CIF)급 카메라폰의 촬상 핵심부품은 물론 초기 양산에 들어간 30만화소급(VGA) 카메라폰의 부품까지 일본 및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업체들이 카메라폰 핵심 부품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어 올 연말부터는 수입 대체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보성금속산화막반도체(CMOS) 센서는 하이닉스반도체(대표 우의제)가 점유율 1위의 옵니비전테크놀로지에 맞서고 있다. CMOS 센서가 올해 처음으로 전하결합소자(CCD)보다 생산량이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하이닉스는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12%를 차지, 선두 업체에 도전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도 CMOS 센서를 곧 양산할 것으로 알려져 국산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업체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부품인 비구면(非球面) 플라스틱 렌즈는 세코닉스, 코렌 등이 일본 업체에 도전하고 있다.
세코닉스(대표 박원희)가 현재 월 50만개, 코렌(대표 이종진)이 월 20만개를 생산 중이며 현재 생산라인과 생산량을 대폭 늘릴 예정이다.
센서와 PCB, 렌즈를 결합한 카메라폰 모듈은 삼성전기(대표 강호문), 삼성테크윈(대표 이중구), 선양디지털이미지(대표 양서일), 한성엘컴텍(대표 이대훈) 등이 일본 제품에 맞서고 있다.
또 AMIC(대표 손관음배) 등이 모듈 시장에 신규 진입할 예정이어서 올 연말께는 약 10개 업체가 양산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카메라폰 부품 업계는 현재 100만 화소급에 맞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어 한국 업체들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량보다는 기술을 쫓아가는 게 중요하며 카메라폰 시장에서 한국 부품이 선진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라며 “특히 수율을 70% 이상 끌어올리는 것이 수입 대체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