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필연동에 사는 이다솔(10)은 요즘 엄마와 인터넷을 보고 만드는 모형 항공기에 푹 빠져 산다. 인터넷에서 항공기 관련 정보도 찾아 보고 그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엄마에게 물어본다. 숙제도 인터넷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다솔이 누나 신애(15)는 중학교에 다니면서도 그 흔한 과외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학습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적은 늘 상위권이다.
마라톤 마니아인 아빠 이연호씨(42)는 인터넷을 통해 마라톤 동호회를 결성하고 마라톤 대회에 자주 참가한다. 이씨는 몇년 전 혈기만 믿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당하면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라톤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과 함께 마라톤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마라톤 동호회를 만들었다. 아빠가 마라톤을 취미로 하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마라톤과 친해졌다. 아이들은 아빠가 마라토너로 참가하는 대회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다솔이네는 누구나 인터넷에 익숙하다. 집에는 컴퓨터가 4대나 있고 초고속인터넷은 기본이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6일 오후 5시께. 다솔이는 집에서 친구들과 펌프(음악을 들으면서 모니터를 보고 춤을 추는 기계)를 즐기고 있었다. 꽤 수준급이다. 2 년전 오락실마다 펌프의 일종인 DDR 열풍이 불었을 때 엄마 이영희씨(39)는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연결하는 펌프를 사 주었다.
“또래 아이들이 펌프하느라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했을 때 우리 애들은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놀았어요. 오락실이라는 곳이 반드시 나쁜 곳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거든요. 아이들은 펌프를 하면서 컴퓨터와 자연스럽게 친숙해졌어요.”
다솔이 가족의 정보화의 일등 공신은 엄마 이연희씨다. 이씨는 지난 94년 남편 직장 때문에 충청남도 논산에서 경기도 광주로 이사하면서 정보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광주는 시골이었어요. 아이들 교육이 문제였죠. 도시가 멀어 학원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했거든요. 그래서 컴퓨터통신인 천리안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씨는 여기서도 한계에 부딪쳤다. 전문가들로부터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내용이 어려워 실생활에 적용하기가 힘들었다. 이씨는 이때 다른 주부들도 자신처럼 아이들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탄생한 게 국내 첫 주부동호회인 ‘천리안주부동호회’다.
“주부들의 눈높이로 접근하니까 한결 쉬워졌어요. 코드가 맞다보니 정보 교환도 자연스러웠구요.”
주부동호회 결성은 평범한 주부인 이씨의 삶을 바꿔 놓았다. 이씨는 다음해 당시 한국정보통신센터(현 정보통신진흥원)에서 정보화 확산을 위해 주부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인터넷탐험한마당’에서 수상했다.
“인터넷탐험한마당 수상을 계기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본격적으로 인터넷에 뛰어들었죠.”
이씨는 다음해에 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주부인터넷챔피언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았다. 한국 주부를 대표하는 인터넷 선수가 된 것이다.
97년 서울로 이사한 이씨는 시민단체인 ‘학부모정보감시관’과 ‘인터넷시대 우리 아이 바로 키우기’ 등에서 활동하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이들은 당시 해외 근무중인 남편과 e메일, 메신저를 이용해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과 친숙해졌다. 이씨는 “다른 집 아이들이 책을 뒤질 때 우리 집 애들은 인터넷을 서핑하고 다녔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신애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물에 관한 숙제를 내줬는데 신애의 과제물을 본 선생님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신애는 인터넷을 활용해 수자원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물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자료로 정리해 숙제로 제출한 것이었다. 인터넷을 활용해 숙제를 한 학생은 신애가 처음이었다.
지난해 이씨 가족은 정보통신부로부터 정보가족상을 수상했다. 컴퓨터나 인터넷 활용도도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정보기술(IT)을 통해 화목한 가정을 만들었다는데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연희씨는 “평범한 주부지만 인터넷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인터넷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이연희씨 인터뷰
“인터넷은 장소나 시간의 장애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살아있는 백과사전이지만 역기능도 많습니다.”
이연희씨는 “인터넷을 타고 유행정보가 가정으로 파고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정보화를 외치면서 정보소외계층인 주부들의 정보교육에 앞장섰습니다. 이제 주부들은 인터넷을 통해 쇼핑도 하고 은행업무도 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도박이나 채팅에 빠져 가정을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르노 등 음란사이트에 물들기 싶습니다.”
이씨는 의지는 확고하다. ‘주부들이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정보사회의 역기능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는 이제 정보화 교육을 인터넷 활용에만 치중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인터넷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아이들의 올바른 인터넷 사용을 위해 엄마들이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스팸메일 등 유해정보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도 엄마들의 몫입니다. 아이들이 음란물 등 유해정보에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역활이 더 큽니다.”
이씨는 집의 컴퓨터마다 유해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아이들은 어린이 전용 메일을 이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온 e메일은 열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컴퓨터는 되도록 거실 등 개방된 공간에 두도록 합니다.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아이들의 e메일과 자주 드나드는 인터넷 사이트를 체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연희씨는 “앞으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함께 하는 가족용 포털사이트가 많이 만들어져 가정간 정보교류의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