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차세대 통신 주도권 잡기에 한창이다. 통신리더십을 놓치지 않으려는 유럽은 3G(3세대)와 3.5G 서비스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캐나다·호주 등은 2.3㎓ 휴대인터넷(3.5G)을 유력한 대안으로 내세워 상용서비스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3G인 WCDMA(비동기식 IMT2000) 상용서비스를 개시해 영역을 넓혀가는 한편으로 올해안에 2.3㎓의 휴대인터넷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모두가 유무선 통합환경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준비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IMT2000 서비스를 착실히 준비해온 우리나라는 3G와 3.5G의 선택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1조원 이상씩 출연금을 내고 WCDMA 사업권을 갖고 있는 SK텔레콤과 KTF는 이 서비스의 비전을 확신하지 못한 채 투자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는 최근 WCDMA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또다시 축소하겠다고 밝히고 한편으로는 2.3㎓ 휴대인터넷 서비스를 차세대 수종사업으로 결정했다. KT·하나로통신 등 유선통신사업자들은 휴대인터넷을 당면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유선통신사업자들은 휴대인터넷을 통해 무선통신사업에 진출하고 무선통신사업자들은 유선기반의 데이터통신사업에 진출하는 효과를 거두면서 유무선 통합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또 사업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정책당국을 곤혹스럽게 한다. 정통부는 올해안에 서울지역에서 IMT2000 서비스 개시를 시작으로 오는 2006년까지 전국 서비스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SK텔레콤의 투자축소 결정 등으로 서울지역 서비스부터 불투명하게 됐다.
더욱이 WCDMA 회의론까지 대두되고 있어 CDMA에 이은 또 한번의 신화창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관련산업에 대한 피해도 적지않다. 삼성전자의 경우 얼마전 3세대 칩을 내장한 이동전화단말기를 상용화하면서 연내에 WCDMA 칩의 상용화를 자신했으나 물거품이 됐고, IMT2000 서비스에 대비한 장비개발을 추진해온 중소업체들은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2.3㎓ 주파수는 올해 할당방법, 사업자 허가방침과 시기, 적용기술 표준에 대한 논의를 거쳐 내년말쯤 할당한다는 게 정부의 일정이다. 즉 2.3㎓ 휴대인터넷은 유럽·미국 등보다 2년 정도 늦은 2005년께 서비스가 가능할 전망이다. 정부는 특히 휴대인터넷이 WCDMA의 효용성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것 같다.
외국에선 WCDMA의 주도권 확보와 휴대인터넷 기술리더십 확보에 혈안인데 우리는 휴대인터넷이 WCDMA의 대체재나 보완재냐 하는 소모적 논쟁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휴대인터넷은 WCDMA와는 차별화된 시장 타깃이 존재하고 앞으로 4G로 발전할 수 있는 가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2.3㎓ 주파수의 조기할당을 비롯한 정부의 차세대 통신서비스 로드맵은 이 시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WCDMA의 연기로 산업의 동력이 떨어진 지금 휴대인터넷의 기술리더십을 확보하고 산업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면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물론 이미 수조원이 투입된 WCDMA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마련도 정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