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기도 지쳤다.”
정보통신부를 바라보는 통신서비스사업자들의 입장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통신서비스 정책에 대한 정통부의 ‘손 놓고 있기’에 대한 비판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통신서비스 정책이 국내 IT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정통부가 하루빨리 정책방향을 잡아야만 사업자와 후방산업계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황=통신업계의 최대 이슈는 구조조정이다. 후발 사업자들이 퇴출위기에 직면하면서 선발사업자와의 인수합병 요구가 증대됐다. 하지만 정부는 사업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이유로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두루넷, 온세통신 등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에 대한 인수 논의도 최근엔 수그러들었다.
WCDMA 정책 역시 골칫덩어리다. 정통부가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SK텔레콤과 KTF는 투자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장비와 단말기업계도 사실상 올해 시장을 포기한 상태다.
통신시장의 핫이슈로 떠오른 휴대인터넷 정책도 마찬가지다. 업계에선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로드맵을 촉구하고 있으나 정통부는 ‘연내 추진계획 확정’이라는 모호한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나로통신 고진웅 상무는 “상용화 일정을 앞당기지 않더라도 최소한 주파수 할당계획 등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사업자들도 준비과정에서 낭비요소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에서 무선으로 거는 전화(LM) 시장 개방문제도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KT 송영한 부사장은 “LM시장 개방이 대세이나 사업자간의 적정한 수익보전 정책이 없는 상황에선 소모적인 논란만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정책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금지 예외조항도 몇달째 잠자면서 사업자는 물론 유통업계까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터넷전화(VoIP)나 가상이동망사업자(MVNO) 등 신규서비스 관련 제도개선도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한 인터넷전화 업체 사장은 “제도개선이 늦어진 데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인터넷전화 확산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장비를 개발한 벤처들도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업자의 주파수를 빌려 이동전화사업을 하는 MVNO 정책도 좀처럼 진전이 없어 이 사업을 준비해온 삼성네트웍스, SK텔링크 등 몇몇 별정사업자들은 맥이 풀렸다. 한 관계자는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과 전략을 검토해왔으나 정부정책이 마련되지 않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휘청거리는 후방산업계=이통장비업계는 올해 WCDMA를 중점사업으로 준비해왔으나 최근 정통부의 서비스 지역축소와 사업자의 투자축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형 장비업체는 물론 중소 중계기업체들도 사업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WCDMA의 경우 장비개발 초기에는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장비개발을 유도해 놓고 이제 와서는 사업자 탓만 하며 나몰라라 하는 태도에 분통이 터진다”며 정통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더욱 우려할 만한 것은 위성DMB와 휴대인터넷 등 차세대 분야에서도 정부의 정책결정 지연으로 그간의 개발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다.
◇왜 늦어지나=대선, 장관 임명 파동, 인사 지연 등의 악재가 겹쳐진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더욱이 정통부가 새정부 들어 IT산업 육성에만 집중하면서 통신서비스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전문성이 필요한 통신규제 관련정책 실무자들의 잦은 교체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통신기획과, 통신경쟁촉진과, 통신이용제도과는 1년 새 두번이나 과장이 바뀌었다.
이와 관련, 정통부는 이달중 변재일 차관이 주재하는 내부 토론회를 갖고 서비스 정책 방향을 잡아갈 예정이다. 그렇지만 정통부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려 방향을 잡는 게 쉽지 않으며 잡는다 해도 세부 정책으로 구현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됐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