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는 형사물, 미국 영화는 SF물.’
최근 극장가 최대 이슈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기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배우를 내세운 토종 우리 영화와 거대한 스케일과 기발한 상상력을 무기로 한 ‘미국산’ SF영화의 대결이다.
올 여름 본격적인 영화 성수기를 앞두고 흥행을 견인할 선두주자의 면모가 형사물과 SF물로 압축됐다. 4월 개봉한 ‘살인의 추억’과 ‘엑스맨 2’의 대결에서는 ‘살인의 추억’이 4주째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이제는 ‘와일드카드’와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한차례 혈전을 벌이게 된다.
사실적인 스토리라인과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를 선호한다면 ‘와일드카드’를, 미래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첨단 컴퓨터그래픽을 좋아한다면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상상 이상의 것을 선물할 것이다. 과거 ‘다이하드’ 시리즈에 열광했다면 ‘와일드카드’를, 99년 ‘매트릭스’에 매료됐던 관객이라면 역시 이번 후편을 선택해도 좋다.
16일 개봉한 ‘와일드카드’는 ‘투캅스-인정사정 볼 것 없다-공공의 적’ 등 형사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과 헐렁한 청바지에 힙합을 노래하던 양동근의 형사연기 변신에 초점이 맞춰지며 기대를 모았다.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형사커플이 얼마나 되는지 등 한국사회의 각종 지수를 줄줄 외고 다니고, 선배 형사에게 주먹까지 날리는 당돌한 신참 형사 양동근은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고 있다.
양동근의 연기력 외에 칼을 무서워하는 형사, ‘출근할 때 2명 잡고, 퇴근할 때 3명 잡는다’며 한창 때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강력 3반장, 작업(?)에 필요한 연장(?)을 차에 싣고 다니는 등 리얼하고 인간적인 형사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다만 신세대 형사 양동근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한채영의 존재가 단지 영화의 양념 이외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탄탄한 시나리오에도 허전함을 안겨준다.
제작비 3억달러에 마케팅 비용으로 1억달러 이상이 투입된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다양한 카메라 기법과 그래픽 등 비주얼적인 면에서 99년 개봉한 전편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편에서 충격을 던지며 각종 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 패러디됐던 예의 슬로모션이 더욱 많아졌고 순간정지기법과 흑백의 강렬한 대비 등도 인상적이다.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워쇼스키 형제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 액션영화 팬답게 와이어 액션의 대가인 홍콩 무술감독 위안허핑을 기용, 동양무술의 세계도 선보인다. 또 고속도로 추격 장면이나 복제된 100여명의 인간과 주인공 ‘네오’와의 결투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긴장을 안겨준다.
그러나 극도로 발전된 디지털 기술에 비해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은 떨어진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네오가 마치 슈퍼맨처럼 오른손을 쭉 뻗으며 나는 모습과 죽은 연인 트리니티(캐리앤 모스)의 몸속에 손을 집어넣어 총알을 빼내고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장면은 SF의 특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허무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늦봄 영화팬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줄 ‘와일드카드’와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대결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