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또다른 전쟁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이라크전쟁이 끝날 무렵인 지난달 중국과 미국은 또다른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은 사스와의 전쟁을, 미국은 스팸메일과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불확실성의 공포가 확대재생산된 사스가 사람의 육체를 공격하는 것이라면 포르노나 나이지리아 사기 메일 등 원치 않는 잡동사니 스팸메일은 사람의 정신에 피해를 준다.

 사스와 스팸 모두 인류 발전과정에서 파생된 부정적인 측면이며 영원히 함께 지내야 하는 만성질병과도 같다. 다행히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기 시작한 사스는 특정 지역 내에 격리가 가능한 반면 인터넷상의 스팸은 지역적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사스가 무서운 병임에는 틀림없으나 조만간 치료백신이 개발되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질 것이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스팸이 살아남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스팸의 출현은 인터넷이 탄생될 때부터 개방성과 기술적인 약점 때문에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다. 인터넷이 무료라고 좋아했으나 원하지 않는 메일도 보아야 하고 해킹도 당해야 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가 보다. 이미 예측됐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스팸이 부쩍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서서히 증가하던 스팸메일 양이 갑자기 급증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스팸이 바이러스를 함께 전파할 수 있어 전체 시스템을 쉽게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스팸과의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인 무기는 대략 세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내용 중에 특정단어를 찾아 걸러주는 필터 소프트웨어가 있고, 둘째는 서버에서 특정 주소를 걸러내는 방법이 있다. 특정 주소는 다시 배제해야 하는 블랙리스트와 받을 주소만을 명시하는 화이트 리스트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셋째는 일반 우편물의 우표와 같이 보내는 사람에게 비용을 발생시키는 알고리듬적 방법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완전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필터는 ‘성인’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가진 사람의 메일을 모두 걸러내고 있으며 블랙 리스트는 자주 바뀌어 추적이 어렵고 화이트 리스트는 단지 몇 사람하고만 교제할 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도 대량 메일을 방지하는 데 유용할 수 있으나 선의의 발송자들을 배제시키는 어려움이 따른다. 현재의 인터넷에서 편의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100%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난 4월말 미국 워싱턴에서는 연방무역위원회 주최로 역사적인 스팸포럼이 열렸다. 정부·기업·법조계·학계 등을 총망라한 이 포럼에서 기술적인 논의도 있었으나 핵심 쟁점은 스팸메일 유포자를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스팸방지 연방법의 제정이었다. 그러나 포럼의 결론은 이러한 법의 제정도 간단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소비자를 대표하는 그룹은 더 엄격한 법제정을 주장한 반면 온라인 마케팅 업계는 선의의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스팸방지에 대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반면 인터넷에서 한발 앞선 우리나라가 스팸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언론에서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불법스팸대응센터’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기관의 일시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대통령도 국민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듯이 이미 우리 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인터넷을 스팸의 피해로부터 구하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정부·기업·언론·법조계·학계 모두 함께 힘을 합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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