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키로 했던 ‘모의 도매전력시장’이 두달 가까이 별다른 개설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관련 업계에서는 전기의 경쟁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4월로 예정된 도매전력시장의 정식 개장 여부도 불투명하게 됐다.
◇왜 지연되나=전기 도매거래의 전제 조건인 ‘한국전력 배전부문 분할’에 대해 정부와 한전이 확실한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최근 들어 청와대가 이 문제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하고, 강동석 한전 사장도 지난달 열린 기업설명회 자리에서 ‘배전분할 문제는 백지상태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당초 정부의 배전분할 추진은 수면 아래로 잠긴 상태다.
산업자원부의 박정욱 서기관은 “전기의 생산에는 다수의 발전소가 참여하는 반면, 소비는 한전 단독으로 이뤄지는 현행 구조하에서는 정상적인 전력거래가 불가능하다”며 “배전부문 분할시 각 분할 경계마다 전력량계를 신규 설치하는 등의 문제로 인해 모의거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전측 입장은 다르다. 박재덕 한전 전력계량팀장은 “배전분할 여부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전력량계를 설치할 수는 없다”고 말해 사실상 전력량계 설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음을 내비췄다. 박 팀장은 “설령 배전 분할이 확정돼 지금 당장 전력량계 설치에 착수한다 해도, 송·배전 부문의 각 분할경계마다 해당 기기를 설치·조정하는 데만 최소 2년이 넘게 걸린다”고 덧붙혔다.
◇현상황=정부의 2단계 전력산업구조개편 일정에 따라 도매전력시장의 개설은 이미 수년전부터 예정돼 왔다. 특히 산자부는 지난 3월 한전측에 ‘도매경쟁 모의운영 준비’라는 공문을 발송하면서까지 전력거래를 위한 관련 준비조직과 인원 운영계획 수립을 독려했다. 하지만 18일 현재까지 한전측에서는 이에 대한 뚜렷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전력거래소(KPX)의 정언진 과장은 “도매전력시장의 모의 운영을 위한 1단계 작업인 시장참여자 등록, 각종 자료교환 등 KPX 내부의 IT관련 기능점검은 모두 마친 상태”라며 “이제는 한전이 배전사업단 구성 등 조직구성과 전력량계 등 관련 기기 설치를 마무리해줘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향후 전망=배전분할 문제가 결론없이 계속 표류할 경우 도매전력시장의 개설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PX 소속 민간 발전 회원사 관계자는 “전력거래의 자유경쟁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산자부 등 관련 부처는 명확한 대응논리를 갖고 배전분할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정부와 한전간 지리한 소모전이 지속될 경우, KPX에서 탈퇴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한전의 민영화 여부와 상관없이 배전부문 분할은 반드시 추진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며 “한전측과 다각적인 접촉을 통해 도매전력시장의 모의운영 시기를 이른 시일내에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도매전력시장이란
일정 규모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대규모 수용가나 전문 판매업체가 전기 공급자인 발전소를 상대로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일종의 ‘전기 장터’다. 이같은 시장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전기를 사고 파는 측이 다수를 형성, 발전사간 그리고 판매사간 자유 경쟁이 가능해야 한다. 이미 지난 2001년 한전 발전부문이 5개로 나눠지면서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는 복수가 됐다. 하지만 현재 전기의 도매 수요처는 송전·배전·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으로 단일화돼 있어 복수 경쟁체제의 도매전력 거래는 불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도매전력시장의 탄생은 배전분할을 전제로 하며 이는 지금의 한전 체제에서 배전·판매 기능의 분리를 의미한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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