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신전화(NTT)’를 ‘공룡’ ‘골리앗’이란 수식어로 설명키엔 부족하다. 물론 NTT는 매출 11조엔(110조원)에 영업이익 1조엔을 올리는 거대 회사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이 NTT에 보내는 전폭적인 ‘신뢰’가 더 큰 자산이다. 일본 이통업체인 J폰의 한 관계자는 “시골에서 J폰이 잘 안 터지면 ‘역시 J폰이라서 안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NTT도코모가 불통이면 ‘이 동네는 휴대폰이 안 되는 지역인가’라고 한다”며 고개를 흔들 정도다. 독점적 사업자가 이런 평판마저 얻고 있으니 가히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고 할 만하다.
80년대 한때 재계 수뇌들이 이런 NTT를 막으려고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다이2덴덴과 일본텔레콤이다. 다이2덴덴은 2위 이통업체 KDDI로 명맥을 잇고 있으며 일본텔레콤은 사실상 해체에 직면해 있다. 잇단 NTT 라이벌 만들기에 실패한 일본 재계는 ‘그렇다면 공룡으로 공룡을 대적시키자’는 논리를 내걸었다. 도쿄전력·간사이전력 등 돈과 인맥, 조직을 갖춘 전력계 회사들이 뭉치면 가능하다는 것.
최근 2∼3년간 일본 매스컴의 단골 머릿기사가 ‘NTT 대항마 뜨나’였다. 아직 ‘떴다’는 말은 안 들린다. 오랫동안 서로를 적대시해 왔던 전력계 회사들이 총론에선 힘을 합치는듯 하다가 각론에선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NTT의 시장 독점에 대해 가장 두려워하는 곳은 바로 NTT 자신이란 점이다.
NTT 초대사장인 신토 히사시는 입버릇처럼 “독점은 악일 뿐, 경쟁이 없으면 진보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NTT 라이벌 만들기’를 제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토 전 사장의 장례식이 지난 1월 28일 치러졌다. 이날 NTT그룹의 와타 노리오 사장과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이 나란히 참석해 그의 명복을 빌었다. 신토 전 사장이 그토록 바라던 NTT의 경쟁상대가 바로 손정의다.
NTT가 지배하지 못한 시장은 ADSL과 인터넷전화. 소프트뱅크그룹은 ADSL시장에서 가입자수가 255만명(4월말 기준)으로 NTT동일본(154만명), NTT서일본(121만명)을 앞선다. 또 인터넷전화 시장에선 216만명 가입자수를 확보해 아예 독보적 자리를 꿰찼다.
신토 전 사장이 기대했듯 경쟁자를 맞이한 NTT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독점기업이 자신의 울타리를 깨기 시작했다. NTT는 일반전화망에 앞서 인터넷전화망에 투자키로 했다. 또 이른바 ‘레나 프로젝트’를 통해 ‘광케이블’을 일본 전역의 통신망으로 삼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애널리스트들은 일본이 이같은 NTT에 힘입어 2005년 이후 세계 최고의 통신인프라를 갖출 것으로 기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토 전 사장의 셋째 아들 신토 유타카는 소프트뱅크그룹 산하 아이피레볼루션의 사장이다. 그는 “손정의 사장은 아버지와 생각하는 방식이 닮았다”고 말한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가 ‘잠자는 거인 전화를 받다’란 제하의 기사를 냈는데 손정의 사장이 NTT에 시대의 변화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