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디지털 생물학

◆디지털 생물학 피터 벤틀리 지음 김한영 옮김 김영사 펴냄 

 자연의 생물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생물도 진화를 거듭하며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디지털 생물은 수와 방정식으로 이뤄진 난해한 것들이 아니며 디지털 세계 또한 모든 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과 비슷하다. 이것이 곧 ‘디지털 생태계’. 이 생태계가 앞으로 우리의 삶과 과학기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디지털 생물학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될 공학자·기술자·예술가 등이 자연의 생물학을 적용해 디지털 세계, 디지털 유전자, 디지털 면역체계 등을 창조해 나갈 것이다.

 디지털 생물학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 피터 벤트리가 지은 ‘디지털 생물학’은 생물학과 컴퓨터를 아주 밀접하게 결합시킨 점이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가 우리에게 정보를 찾아주고, 범죄를 알려주고, 새로운 상품을 디자인하며, 예술을 창조하고 음악을 작곡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의 뇌를 거치지 않은 문화와 과학기술이 디지털 생태계가 갈수록 발전하는 컴퓨터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세계·진화·뇌·곤충·식물·면역계·성장으로 제목 붙여진 7개의 독립된 주제로 구성돼 있지만 순서대로 읽어가다 보면 생태계의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universes)가 규칙에 따라 만들어지듯이 컴퓨터 프로그램도 그러하다. 컴퓨터에는 우리의 세계에 없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를 작성해 디지털 세계 안에 존재하는 비트의 기본적인 운동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디지털 세계가 이 세계와 비슷한 법칙을 따르게 만든다면 그야말로 디지털 생태계가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자연의 진화(evolution)는 유전·변이·선택의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이진수 문자열로 구성된 진화 알고리듬의 유전자도 유전·변이·선택이 수반된 번식을 이용하는데 이 모든 일이 컴퓨터 안에서 일어난다. 컴퓨터는 프로그램을 진화시킴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세계 안에서 진화할 수 있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뇌(brains)는 진화의 걸작이다. 디지털 뇌는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모든 디지털 신경망이 뇌와 똑같은 방식으로 배선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세포들 사이에는 항상 피드백을 수반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인간의 뇌에서와 똑같이 감지기를 통한 외부적 압력으로 교란이 발생할 때 디지털 신경망은 학습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로봇의 학습이 가능해질 수 있다.

 ◇곤충(insects)이 집단을 이뤄 고차원의 유기체가 되면 또 다른 형태의 지능을 보여준다. 이에 착안해 컴퓨터 공학에서는 수년동안 우리의 문제해결을 위해 상호작용하고 협동하는 에이전트들을 컴퓨터 안에 적용해 왔다. 디지털 개미집단들이 최단거리를 계산하고 디지털 곤충 무리가 검색공간 내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 언젠가 로봇의 무리가 우리의 혈관 속에 들어가 아픈 부위를 치료할 날이 올 것이다.

 ◇식물(plants)은 자연이 보여주는 온갖 패턴 중 가장 볼 만한 예를 제공한다. 물론 이런 패턴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이를 컴퓨터에 적용했을 때에는 종종 놀라운 결과가 발생한다.

 ◇면역계(immune system)는 살아남기 위해 수백만년 동안 싸워온 유기체들의 놀라운 생산물이다. 컴퓨터 또한 인간의 면역체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은 다양성 발생, 클론 선택, 부정적 선택 등의 개념을 이용해 피드백과 함께 상호작용을 일으켜 해커나 컴퓨터 바이러스와 같이 해로운 교란요인에 대응한다.

 ◇발생을 통한 성장(growth) 또한 위대한 기적이다. 컴퓨터에서 발생은 여전히 새로운 개념이다. 그러나 컴퓨터 안에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에서는 작은 디지털 다세포 유기체들이 실제로 성장하고 있다. 예컨대 기계어 암호 프로그램은 처리 사이클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싸운다. 언젠가는 DNA컴퓨터로 창조된 디지털 세계에 갖가지 디지털 유기체가 성장하는 날이 올 것이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