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디지털TV 표준 결정 신중해야

 그동안 미국의 지상파 디지털TV 전송방식을 고수해왔던 KBS가 전송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방식 변경을 전제로 한 것으로 우려와 환영을 표할 수밖에 없는 미묘한 사안이다.

 디지털TV 전송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번 결정한 것은 시일이 지날수록 돌이키기 어렵다. 우리가 현재 유럽 방식의 TV수상기로서 국내 TV방송을 시청하지 못하는 것처럼 방송 방식이 한번 바뀌면 가정이나 사회에 보급된 TV도 거의 다 바꾸거나 적어도 그 방송신호를 잡을 수 있는 장치를 따로 설치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TV는 이제 초기 단계로서 시장규모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물론 전세계가 흑백TV에서 컬러TV로 바꿨듯 이제 그것을 다시 디지털TV로 바꿔야 한다. 특히 디지털TV는 방식이 기존의 아날로그와 달리 디지털로서 앞으로 컴퓨터나 통신과 접속됨으로써 가정의 중요한 단말기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TV 방식의 결정이나 변경은 매우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정부는 국내 표준을 미국식으로 결정한 바 있다. 국민들도 미국 방식의 TV를 적지 않게 구매해 시청하고 있으며 내수 시장을 겨냥한 많은 부품업체들이 부품을 가전업체들에 납품하고 있다. 또 국내 가전업체가 미국 방식의 원천기술을 상당히 많이 지니고 있어 미국 방식이 세계에 널리 퍼질수록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KBS가 디지털TV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 만약 TV 방식을 유럽식으로 바꾸기라도 한다면 산업체는 물론, 국민들이 많은 피해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국내 표준을 미국식으로 정한 정통부도 큰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상황을 모를 리 없는 KBS가 방송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면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 같다. 안동수 KBS 부사장이 “유럽 방식이 미국 방식보다 뛰어나다”며 “97년 정부가 지상파 디지털TV 전송방식 선정 당시 KBS의 합리적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곧바로 개발·시험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고 한 말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수한 방식을 놔두고 우수하지 않은 방식을 채택한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만약 방식을 변경한다면 그에 따른 국민은 물론 부품업체, TV 생산업체 등이 입게 될 피해에 대해서도 정부가 책임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KBS도 공영방송으로서 결과적으로 사회 각 부문에 피해와 혼란을 초래하게 했다면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듯 이번 TV 방송방식 재검토는 필요하며 방식을 변경하는 것이 옳다면 이제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동안 시민단체 등에서 주장해왔던 것처럼 유럽 방식이 정말 우수한지 면밀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검토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번 검토는 단순히 디지털TV 성능비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국가나 국민, 업계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