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성질 죽이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누구는 성질 없어서 조용히 있나. 혈압 오르는 일들이 한두 번이어야지. 몸이 부르르 떨리도록 큰소리 지르며 성질 한 번 내보고 싶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다. 개인적 욕구는 충족되지 않고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며 분노는 폭발 직전까지 치솟지만 집단적 요구는 더 늘어간다. 왜소한 개인의 자아는 거대한 세계와 맞부딪치면서 보이지 않게 피를 흘린다. 우리는 모두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이다.
틱낫한 스님의 베스트셀러 ‘화’가 제목만으로도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피터 시걸 감독의 ‘성질 죽이기(원제 Anger Management)’ 역시 절묘한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성질 내지 않는 순둥이 남자와 그의 화를 있는 대로 돋구는 심리치료사의 충돌. 역시 영화는 기본 컨셉트가 좋아야 한다. 데이브 버즈닉(아담 샌들러 분)이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그의 자리에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다. 남자는 비켜줄 생각도 안한다. 다른 빈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옆에 앉은 인상 더러운 중년의 버디 박사가 쉴새없이 못살게 군다. 스튜어디스를 불러보지만 동료와 이야기하느라고 꿈쩍도 안한다. 옆에 온 그녀의 팔을 건드리자 이번에는 폭행당했다며 소송을 건다. 그리고 그는 법원에서 ‘성질 죽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데이브의 옆자리에 앉았던 버디 라이델 박사(잭 니콜슨 분)는 성질 죽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심리치료사다. 그의 환자들은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치료명령을 받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버디는 데이브의 집으로 짐을 싸들고 온다. 24시간 밀착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가 아니라 점점 더 데이브의 분노를 폭발시키려고 노력한다. 나중에는 그의 애인까지 빼앗으려 한다. 당신 같으면 이래도 성질 죽이고 가만히 있겠는가.
그러나 ‘성질 죽이기’는 당신의 분노를 돋구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해독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있으면 데이브처럼 폭발 직전까지 치솟던 당신의 분노도 어느 순간 봄눈 녹듯 사라진다.
‘성질 죽이기’의 성공은 첫 단추인 기발한 컨셉트도 좋았지만 그것을 이어가는 캐릭터 구축이 더 뛰어난 작품이다. 물론 이런 캐릭터 영화들의 승패는 그것을 연기한 배우들에 달려 있다. 최고의 코미디 배우 애덤 샌들러와 아카데미 수상 3번, 노미네이션 12번 경력의 개성 있는 연기파 배우 잭 니콜슨은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에너지 넘치는 연기로 팽팽하게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성질 죽이기’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카메오들이다. 우리와 문화적 환경이 달라서 미국 관객들에게 주는 파괴력보다는 못하겠지만 테니스 악동 존 매켄로, 전 뉴욕시장 길리아니, 심판에게 욕설을 하고 집기를 파손하기로 유명한 바비 나이트 등 실제로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각계의 저명인사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또 우디 해럴슨, 존 터투로, 헤더 그레이엄, 라일리 등 할리우드 일급 연기파 배우들이 단역 출연을 마다않고 기꺼이 얼굴 내민 것도 볼거리다. 역시 성질을 낼 때는 내야 한다. 그것보다는 우리 가슴속에 쌓이는 분노의 근원을 스스로 탐색해 보는 것이 좋다. ‘성질 죽이기’는 그 안내자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