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라고 노래만 하라는 법, 탤런트라고 연기만 하라는 법 있는가. 노래하든 연기하든 따지고 보면 다 TV상자 안에서 있는 일이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가수가 노래한다고 신기할 것도 없고, 연기자가 음반을 내놓았다고 귀를 쭈뼛 세우지도 않을 것이다.
요즘 시대의 키워드인 ‘영역파괴’에 들어맞기도 하거니와, 연예인 입장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겸업’은 하나의 유행처럼 되다시피 하고 있다. 가수 중에는 드라마 연기만이 아닌, 연예 프로 진행도 하고 심지어 모델로도 나서기도 한다. 이 정도면 이중생활을 넘어 ‘다다익선’의 상황이다.
가수 중에 연기자로 발돋움한 케이스로는 SES의 유진, 핑클의 성유리, 신성우 등이 손꼽힌다. 성유리는 드라마 ‘천연지애’의 도도한 공주 행동과 말투가 젊은 층에 어필하면서, 신드롬마저 생겨났다.
성유리와 핑클에서 한솥밥을 먹던 이효리, 그리고 주얼리의 박정아는 MC로서 제2의 성공을 창출하고 있다. 이들이 인기 상종가를 치자 CF를 정복하는 것도 당연지사. 왕성한 식욕이다. 아마 패션모델이나 영화배우로 성공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연기자에서 가수로 변신해 성공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차태현은 벌써 2장의 앨범을 내놓았고 현재 ‘어게인 투 미’는 가요베스트 리스트에 올라있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영웅 안재모 역시 드높은 위세를 과시하듯 얼마 전 음반을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용의 눈물’에서 여고생답지 않게 성숙한 연기로 눈길을 모은 여고생 탤런트 이혜련의 경우 가수로 전업(轉業)하기 위해 최근 이름도 ‘유니’로 바꾸고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드라마가 힘들어 어릴 적 꿈꾸던 가수로 방향을 바꿨다지만 만약 가수로서 성공하면 그가 연기를 겸업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탤런트 가운데에서도 “음반을 한번 내볼까?” 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팬들의 피드백이 다소 정적(靜的)인 연기자와 달리 가수는 무대에서 직접 관객을 만나고 열띤 호응 속에 스타덤을 만끽할 수 있는 동적 매력이 있으니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반대로 비주얼 조건이 유리한 여가수는 성공사례가 빈발하자 연기자 또는 MC가 되고자 하는 유혹에 시달린다. 지난해 데뷔해 ‘이별후애’를 히트시킨 여가수 린애가 가수 외에 품고 있는 또 하나의 꿈은 연기자다. 미스 월드 유니버시티에서 포토제닉상을 수상한 바 있는 공인 미모이니 오버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노래든 연기든 예술분야는 급격히 산업화되어가면서도 ‘예술 혼’이란 기본은 잃지 않고 있다. 한군데 아주 오랫동안 매달려야, 즉 혼을 발휘해야 그 분야의 실력자가 되는 것이다. 바로 ‘한 우물 파기’의 미학이다. 이것은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연예계의 다다익선 기조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두 군데 이상에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여러 군데 모두에 강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집중력을 둘 이상으로 쪼개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다다익선을 노리는 겸업은 잘못하면 낭패를 부를 수 있다. 후대의 평가에서도 불리하다.
한 우물 파기는 영역파괴의 트렌드 속에서 답답하게 비쳐지겠지만 그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연예계만을 본다면 ‘다다익선은 상술’이고 ‘한 우물 파기는 예술’ 아닐까?
임진모(http://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