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재경의 인기비결

 넉넉한 풍채에 둥글둥글한 얼굴이 마치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게임 해설자 엄재경(36)에게는 ‘걸어다니는 데이터베이스’라는 호칭이 늘 따라다닌다. 스타크래프트 리그와 관련해서는 언제든 옆에서 쿡 찌르기만 하면 관련 자료를 줄줄이 토해낼 정도로 모든 경기결과가 그의 머리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데서 비롯된 호칭이다.

 지난 99년 스타크래프트 리그 중계방송이 시작될 때부터 해설을 도맡아온 그는 사실 게임방송의 터줏대감이다. 특히 그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분석과 경기를 예측하는 ‘수완’은 가히 독보적이다.

 특정 종족과의 상대전적이라든지 맵과 진영, 비공식 연습경기 결과까지도 분석의 대상으로 삼다보니 그의 해설을 듣고 있노라면 프로게이머들의 경기 자체가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엮어진다.

 당연히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모 인터넷 사이트에 둥지를 틀고 있는 그의 팬클럽 동호회에는 6000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것도 동호회 운영자가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엄선한 회원들이다 보니 실제로는 웬만한 프로게이머들이나 미모의 게임자키들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끌어들여 분석하고 통계를 내준 것이 먹혀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의외였어요.”

 엄재경 스스로는 자신의 인기비결이 마치 옆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친근감에 있다고 했다. 굳이 덧붙이자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도 수치를 들어 분석하고 통계를 내 소개하는 등 자칫 딱딱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말솜씨가 좀더 곁들여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전략의 흐름까지 게임 전체를 읽어냄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아! 그렇구나’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하는 그의 해설 스타일은 ‘만화 스토리 작가’라는 그의 또다른 직업이 배경이 됐다.

 사실 엄재경은 한때 만화업계에서는 대접을 받는 스토리 작가였다. 인기만화 ‘까꿍’도 그가 만든 스토리다. 그가 밤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자는 올빼미족이 된 것처럼 뛰어난 분석력을 토대로 경기에 대한 정확한 시나리오 예측을 내놓는 일을 즐기듯 하는 것도 만화일을 하면서 익숙해진 그만의 습관이다.

 더구나 그는 게임이 좋아 벌써 몇년째 게임길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독한 게임광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동안 스타크래프트만 가지고도 직접 시험을 해본 것이 벌써 5만건이 넘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미니맵에 스쳐 지나가는 유닛만 보고도 대강의 업그레이드 정도를 짐작해내는 관찰력을 보인다.

 또 하나 그의 해설은 남모르게 밤을 새워가며 기존 정보를 분석하고 여기에 그날그날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따라 각기 다르게 만든 원고 덕분에 더욱 정확해진다.

 이 시대 최고의 게임해설가 엄재경의 소망은 ‘여유가 생기면 다시 만화 스토리작가 일에 전념하는 것’. 하지만 그런 그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스타리그와는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어한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