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증권업계 IT투자의 최대 이슈였던 예탁결제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보류’ 기류로 돌아서고 있다. 이는 STP 도입 배경이된 미국의 ‘T+1’ 환경구축이 연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증권업계의 신규투자 여력이 갈수록 어려워져 STP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든 것도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투자 보류 배경=예탁결제시스템(STP:Straight Through Processing)은 국내외 기관투자가·증권사·증권거래소·증권예탁원·결제은행 등 기존 시스템을 연계하고 교환 메시지를 표준화해 주문·체결·매매확인·결제 등 증권거래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증권업계의 STP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미국 증권업계가 내년부터 증권결제 주기를 현행 3일(T+3)에서 이틀을 단축시킨 ‘T+1’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나섬에 따라 급부상했다. 글로벌 거래를 추진해온 국내 증권업계로서는 ‘T+1’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STP의 구축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증권업협회가 ‘T+1’ 실시 여부 자체를 내년 10월 이후로 미루면서 국내에서도 STP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국내 STP서비스 현황=한국증권전산이 지난 4월 삼성투신운용과 삼성증권에 STP서비스 제공에 나섰다. 이는 비록 앞단에서만 서비스 연동이 가능한 기초단계였지만 기존 전화 또는 팩스에 의해 수작업으로 처리되던 주문 관련 업무를 국제표준규약인 ‘FIX’ 프로토콜로 표준화해 실시간으로 처리하게 됐다는 점에서는 기존 시스템에 비해 진일보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우증권이 5월 FIX를 통한 매매시스템 개발을 완료한 데 이어 LG투자증권·현대증권·한국투자신탁 등도 해외 거래를 염두에 두고 ‘FIX’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투명성 보장이란 취지에서 볼 때 ‘FIX’를 기반으로 한 매매시스템 개발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망=증권업계의 STP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미국만 해도 ‘STP를 구축하면 T+1 개통 일자를 정하겠다’는 정부 입장과 ‘T+1’ D데이를 정해주면 투자하겠다는 증권업계의 입장이 맞서고 있다. 미국 업계는 현재 ‘T+3 체제에서 STP는 재정 낭비’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미국 업계의 추이를 주시해온 국내 증권업계가 당장 STP에 대한 투자를 단행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지속되는 경제 불황이 업계의 신규투자에 대한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증권전산의 정지석 트레이딩시스템 사업팀장은 “STP의 필요성 여부를 떠나 현재로서는 IT신규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며 “시장활성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정확히 STP 수요가 언제 일어날지를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올 하반기에 자산운용법이 통과되면 낮은 수준의 STP가 일부 도입돼야 하는데 이것이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