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는 과학기술과 문화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 없이는 경제성장, 생활의 편리, 문명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또 인간다운 생활, 삶의 질 향상, 행복지수 제고는 문화활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과학기술이 인간사회의 견인차 노릇을 한다면 문화는 인간 사이의 정감을 풍성하게 연결해주는 그물망으로 기능한다.
이와 같이 과학기술과 문화는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두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과 문화는 국가에 따라 그 관계가 자못 다르다. 특히 한국은 서구의 과학기술을 전혀 다른 사회문화 환경에서 발전시키다 보니 양자 사이에 간격이 크게 벌어져 있다. 수많은 사람에게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영화나 소설은 현대 과학기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SF류는 가장 외면당하고 있는 장르다.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문화의 일부라는 인식은 결여돼 있다. 우리에게 생활·문화·놀이로서 과학기술은 너무 낯설기만 하다. 때문에 우리는 과학기술문화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며 그 진흥을 위해 힘쓸 필요가 크다. 우선은 서구의 다양한 과학기술문화를 소화해 받아들이되 동시에 한국의 특성을 적절히 가미하면서 과학기술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기술문화는 과학기술보다 더 지역성·민족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사회 속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자연사박물관이 있어야 하지만 선진국들이 공룡 위주의 자연사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급속한 도시화와 아파트 주거문화로 인해 자연환경을 친숙하게 접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사박물관이라 할지라도 곤충·식물·동물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고 그것을 다양한 형태로 여러 개 세우는 것이 적은 재원으로 큰 효과를 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 선진국에서는 뛰어난 업적을 낸 과학기술자를 기리면서도 따로 명예의 전당을 설치해놓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 배출한 위대한 과학기술자를 어려서부터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장영실·허준·우장춘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른다.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자를 기념하는 활동을 벌이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는 역사의 뒤편으로 잊혀지고 말 것이다. 과학기술 문화유산을 보관하는 과학기술 아카이브도 이와 비슷한 예라 할 수 있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현안의 하나는 이공계 기피현상이다. 과학고의 대부분, 심지어 서울대 공대의 상당수 학생은 의대 진학이나 고시 준비로 진로를 바꾸고 있다. 이런 이공계 위기는 그동안 무관심으로 빚어진 과학기술문화의 부재에 기인한다. 정치인과 행정관료는 과학기술을 성장의 도구로, 일반시민은 자신과 거리가 먼 어렵고 따분한 대상으로, 과학기술자는 직업적 과제로 여긴 결과다. 그러므로 지금의 이공계 위기도 결국 우리 사회에 맞는 과학기술문화의 발전과 정착을 통해 해결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rootkgb@chonb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