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정통부 장관 특별 인터뷰

 ‘미스터 반도체’에서 ‘미스터 IT코리아’로의 변신.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참여정부의 국가정보화 전략을 책임진 지 100일이 지났다. 반도체신화를 일궜던 그이기에 장관 취임 이후 줄곧 세간의 집중조명을 받아왔다. 이제 진 장관에게는 앞으로 5년, 10년후 우리나라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할 역사적인 소명이 주어졌다.

 정부부처 가운데는 처음으로 정통부에 민간기업의 경영혁신운동인 ‘6시그마’를 도입해 작지만 강한 정부의 표상으로 변신시키겠다는 의지도 돋보인다. 정부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업계에서도 그에게 거는 기대가 각별한 이유다.

 진 장관은 “나에게 주어진 소임은 다시한번 IT코리아의 중흥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밖에 어떤 다른 욕심도 없다. 정보기술(IT)정책을 맡고 있는 최고 공직자로서 정통부 직원들과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간기업 CEO 출신이기에, 또는 이미 ‘진대제’라는 개인 브랜드나 아쉬울 것 없는 화려한 환경 탓에 공직사회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한꺼번에 불식시키는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CEO에서 이제는 완전한 공무원으로 변신한 진 장관을 만났다. 편집자

 일시:6월12일 17:00∼18:00

 장소:정보통신부 장관 집무실

 대담:원철린 IT산업부장

 

 ―최근 통신시장에 여러가지 현안이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정통부가 손놓고 여유부린다는 지적이 많다. 통신시장의 비대칭규제 정책은 물론이고 WCDMA나 휴대인터넷 등 차세대 서비스 도입에도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각종 현안에 대한 정부정책을 조속히 밝힐 때가 아닌가.

 ▲통신정책 대부분은 사업자들과 소비자의 이해관계를 좌우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아직은 사안마다 구체적인 정책을 발표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책을 밝힐 만큼 여건이 성숙할 때는 분명히 정부의 입장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업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정책이 명확하게 예정돼야 한다.

 ▲표현시기에 따라 모호해 보일 수 있다. 현재 통신서비스 정책과 관련, 강조할 수 있는 원칙은 변함없는 유효경쟁 체제다. 각종 비대칭규제 현안이나 차세대 통신서비스 도입여부도 이런 원칙하에서 검토될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통신3강 정책은 시장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 지난 정부 시절만 해도 유효경쟁 체제를 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장구도였지만 지금은 다를 수 있다. 굳이 통신3강 정책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비동기식 IMT2000(WCDMA) 정책을 놓고 비판이 많다. 당초 정부와 사업자들이 약속한 바와 달리 도입시기는 물론이고 투자규모도 기대에 못 미친다. 정부가 시장상황과 사업자들의 사정에만 연연한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시기는 다소 늦춰지고 서비스 지역도 비록 제한적이지만 올 연말 상용서비스 계획을 유도한 것만 해도 성과다. 몇년 전에 약속했지만 시장여건이 안 돼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사업자들을 강제할 수 있겠는가. 일례로 지금 WCDMA 사업권자들의 주주는 사실 국민이다. 이들 사업자에게 무리한 투자를 강요했다가는 주주들, 곧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정부나 사업자가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본다. 한가지 더 큰 문제를 지적하자면 오히려 장비업계의 책임도 크다. 기업경영에서 수요예측을 잘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으며, 더욱이 업계 스스로가 과당경쟁을 자초해 경영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최근 VDSL 장비업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사업자나 정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정통부의 9대 성장엔진 전략은 범국가적인 과제다. 하지만 지난 시절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관행을 보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도 제대로 성과를 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효과적인 추진방안은 무엇인가.

 ▲여러가지 시행착오의 사례를 익히 알고 있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 일례로 지난번 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방문했을 때 “ETRI만 연구기관은 아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로 내 뜻을 밝힌 바 있다. 9대 성장엔진과 관련해서는 국책연구기관의 R&D에만 의존하지 않을 생각이다. 현재 몇몇 외국업체들과 협의중인 R&D센터 국내유치가 성사될 경우 이들에게도 정부 지원과제를 수행토록 기회를 줄 계획이다. 실제로 아직 협상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라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일부 업체들과는 아주 깊숙한 수준까지 논의하고 있다.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만큼 구체적인 진척상황을 밝히기는 어렵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CDMA 첫 도입당시 우리가 퀄컴으로부터 국내 R&D센터를 유치하지 못한 것이다.

 9대 성장엔진은 산업적인 파급효과가 매우 중요한 품목들이어서 국내 산업기반 조성에 주력하고 있고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SW)만 해도 중요성에 비해 현재 전문인력수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현재 1만3000명 정도에 불과한 임베디드 SW 전문인력을 단기간에 3만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최근 우리나라의 신수종산업으로 디지털홈 시장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컨소시엄 구성과 기술방식 등은 업계 자율에 맡길 예정이다. 다만 정부는 디지털홈 기술·장비들이 서로 호환될 수 있도록 표준화는 강력히 추진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기술협회(TTA)를 주관으로 이미 정부 차원에서 표준화 작업에 착수했다.

 ―국내 이동통신 산업의 수출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 GSM 테스트센터를 설립해달라는 목소리가 있다. 일부 이동전화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장비가 CDMA에 제한돼 있고 수출도 어려운 실정이다. GSM 현장테스트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할 용의가 있나.

 ▲필요할 경우 GSM 테스트센터를 국내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그러나 통상마찰의 우려 때문에 자금지원 등 정부가 직접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는 쉽지 않다.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 지원할 생각이다.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여론이 거세다. 다소 성급한 정책판단이었다는 지적도 많다. 앞으로 보완 또는 개선할 생각은 없나.

 ▲국민의 국정참여 수단이 부족한 현실에서 정부 게시판이 국민의 의사표시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그 기능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완책으로 정통부는 실명을 확인만 한 뒤 표시 여부는 사용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실명확인 기록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공개토록 해 네티즌의 참여를 위축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차세대통합네트워크(NGcN)는 미래 국가의 통신뼈대를 재설계하는 작업이다. 그만큼 중차대한 과제다. 일각에서는 가입자망의 기술로 케이블(HFC)에 무게를 싣는 것 아니냐는 궁금증이 많다.

 ▲유선망의 경우 전화선(DSL)과 케이블 가운데 기존 가입자망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점진적인 고도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5년, 1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DSL과 케이블은 초고속인프라로 공존해 갈 것이다. 대신 궁극적으로는 댁내광가입자망(FTTH)이 목표다. 이 진화과정에서는 수요와 공급을 적절히 연계함으로써 기술개발과 동시에 시장창출을 유도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계획수립 단계부터 공동 참여해 기술개발과 표준화, 망구축 계획을 수요전망과 조율해 나갈 계획이다.  

◆진장관이 내비친 속내

 진대제 장관이 최대 약점이라는 통신서비스 정책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갓 취임했을 때만 해도 산업 등 다른 정책에 대해 거침없는 소신을 밝혔으나 통신서비스정책만큼은 침묵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진 장관은 “설익은 밥을 내놔야 좋을 것 없다”고 말하기도 했고 “통신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불러도 대답할 수 없다”면서 여전히 말을 아꼈다. 현대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내세워 통신정책의 모호성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소신과 원칙에 따라 인터뷰중 언뜻 언뜻 속내를 내비쳐 어느 정도 ‘분위기 파악’을 끝냈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숫자가 뭐 중요하겠느냐. 시장환경에 따라 2강도 될 수 있고 심지어 4강, 5강도 되지 않겠느냐. 지금 상황에서 굳이 통신3강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근근히 유지돼온 통신3강 구도 정책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통신3강 정책을 유효하게 끌 때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러한 시점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발언은 데이콤·파워콤·LG텔레콤 등 유무선 통신계열사들을 거느린 LG그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통신시장 최대 현안인 WCDMA를 놓고도 그간 숨겨온 진의를 표출했다. “솔직히 SK텔레콤이나 KTF가 WCDMA를 아예 안하거나 더욱 연기하는 상황을 걱정했다. 올 연말께 서울지역 시범서비스를 강제한 것만 해도 다행 아니냐. 이제 WCDMA 도입에 대해선 한시름 덜었다.” 당초 정부와 사업자들이 약속한 도입시기와 투자규모가 상당 부분 후퇴했지만 그나마 현실성있는 타협점을 찾았다는 안도감이다.

 진 장관은 정책의 피해자라는 장비업계에 되레 책임론을 제기했다. “내가 삼성전자 사장도 해봤지만 현재 WCDMA 시장에서 더 큰 문제는 장비업계에 있다. 기업으로선 수요예측을 제대로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고 또한 업계 스스로 과당경쟁을 촉발해 어려움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WCDMA 도입 차질엔 우리 모두의 오류가 있었다는 지적이나 속마음을 드러낸 셈이 됐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