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여성벤처협회장 이영남 대표(1)

 누군가 내게 “여자가?” 라는 말을 한다면 나는 “여자라서” 더 잘 할 수 있다고 답할 것이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특유의 유연한 비즈니스 감각과 성실성은 사업에 있어 무엇보다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땀과 열정으로 키워온 이지디지털은 산업용 전자통신계측기 생산업체다. 여성이 사업을 한다면 격려는커녕 곱지 않은 시선이 먼저 꽂히던 시절에 남성적인 업종에 뛰어들었으니 그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변의 냉소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가 서럽기도 하고 오기가 나기도 했지만 ‘진실은 반드시 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해나갔다.

 처음에는 기술적인 지식도 없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보니 뭐든 발로 뛰면서 도울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밤새워 연구·개발하는 직원들의 야식을 준비하기도 하고 야학생 직원들이 소풍을 갈 때에는 직접 김밥을 싸들고 왔다. 심지어 남자직원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술자리를 자청해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는 나의 열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직원들과 고객사들 그리고 해외의 바이어들에게 전해졌고 연 매출 250억원이 넘는 이지디지털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됐다.

 여성벤처협회장을 맡는 동안 나의 경험은 또한번 의지와 신념으로 영글어갔다. 사회적으로 벤처산업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던 그 무렵 벤처기업인협회가 결성되고 제도적인 벤처육성에 대한 노력과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여성 벤처기업인을 위한 별도의 제안이나 정책적인 혜택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실정이었다. 나는 우선 몸소 경험했던 그리고 여성경영인이라면 누구라도 느꼈을 각종 불편사항을 해결하는 것을 협회의 목표로 삼았다.

 그 첫단계가 여성경영인들의 휴먼네트워크 구축. 남성사회에서는 학연이나 지연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사업상의 많은 일들을 돕고 있는 것이 일반화돼 있지만 여성경영인들은 휴먼인프라가 부족해 겪는 어려움이 많았다. 정기적인 세미나와 대외적인 행사를 개최했다.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사회적인 관심도 높일 수 있고 여성경영인들 스스로도 능동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여전히 투자유치에 취약한 여성기업인을 위해서는 여성기업 전용펀드도 필요했다. 또 투자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역량있는 여성기업을 발굴해 적극적인 투자와 관심을 끌어내는 데 힘을 기울였다.

 여성벤처협회장을 연임하면서 다소의 부담감은 있지만 한결 희망차다. 그동안 공들여 온 각종 노력들이 성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보람은 여성경영인들이 자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협업하는 성숙된 분위기를 이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일은 230여개 회원사의 마케팅 활동 지원과 글로벌 기업화. 다시한번 기운 찬 발걸음을 시작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