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정복하기 위해 수천개의 화학물질을 반응시켜 신약이 될 수 있는 후보 물질을 찾아낸다. 그동안 세계적인 제약기업들이 불치병 정복을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수천만달러의 돈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엄청난 작업이다.
그러나 최근 돼지나 닭 등 동물에서 화학적인 방법이 아닌 생물학적 방법을 이용해 인슐린이나 인터페론 등과 같은 치료용 단백질을 생산하는 시대가 열렸다. 독성이 큰 화학적 방법이 아니라 인체와 가장 유사한 동물을 만들어 가장 인간친화적인 약이 탄생하는 것이다.
엠젠바이오의 박광욱 박사는 “전세계 연구진은 동물에 대한 핵이식과 형질전환 복제기술을 이용해 인슐린이나 인터페론 등과 같은 고가의 치료용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이런 기술은 또 향후 초급성 거부반응의 원인 유전자(GGTA1)를 제거한 복제돼지를 만들고 그 장기를 인간에 이식하는 시대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형질전환 복제기술을 이용해 복제돼지의 젖에서 치료용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돼지의 젖이나 오줌에서 고가의 치료용 단백질을 얻어 분리, 정제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동물이 만들어내는 의약품은 빈혈 치료제인 ‘조혈촉진호르몬(EPO)’과 혈우병 치료제 ‘팩터8’,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 등 고가 의약품이다.
지난해 초 미국 미주리대가 해파리의 형광유전자를 주입한 노란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 데 이어 영국의 PPL사, 서울대, 엠젠바이오 등이 돼지복제 기술을 확보했다. 이들의 1차적인 목표는 치료용 단백질의 대량생산이다. 이와 함께 면역거부 유전자를 제거한 형질전환 복제동물을 통해 인체의 장기를 대신하는 이종장기를 이식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돼지뿐만 아니라 조류인 닭을 형질전환하고 복제하는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조류의 알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종류가 적어 분리 및 정제가 쉽다. 포유동물과 다른 진화과정을 거친 조류는 동물성 질환이 적고 유전자가 안정돼 단백질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다. 닭은 세대주기가 짧아 대량생산도 용이하다. 아비제닉스사와 비라젠사는 형질전환 조류를 이용해 각각 혈청알부민과 항암 백신을 연구중이다.
이제 신약은 화학공장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동물 제약공장에서 제조되고 향후에는 심장과 신장, 췌장, 피부, 각막 등의 이식용 장기까지 생산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