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실리콘밸리의 핵심 새너제이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101’을 타고 밸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무실 임대를 알리는 부동산 표시였다. 3년째 계속된 불황으로 빈 사무실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는 사실이었다. 공항에서 구입한 이 지역 유력지 새너제이머큐리는 지난 5월 미국 전체 실업률이 6.1%로 최근 9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는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 가트너 등 시장조사 협회와 기관들이 올 반도체 시장 전망을 일제히 낮췄다는 발표를 접했다. 실리콘밸리의 10여개 반도체 회사를 취재하러 가는 길은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볕과는 반대로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경기회복’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9·11테러와 이라크전, 그리고 사스(SARS)까지 잇단 외부 악재가 밸리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3년째 공급과잉, 소비위축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해 신규 투자가 감소했고 심지어는 연구개발(R&D) 비용까지 줄여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취재를 마치고 새너제이에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갈 때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밸리의 많은 반도체 업체들은 “곧 회복될 것”이라는 공통된 확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경기를 묻는 질문에 답하는 관행적인 ‘긍정(will recover soon)’과는 차원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들어 계속되고 있는 실리콘밸리 나스닥 기업의 기술주 랠리가 섣부른 기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주 중심의 인수합병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대형 인수합병은 아니지만 차세대 기술을 보완하는 형태의 M&A는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아시아 시장을 공략해 성장의 동력을 이루겠다는 각 기업도 디자인센터를 세우고 공동 R&D를 강화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밸리를 떠났던 사람들도 다시 밸리로 모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20년째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 구창회씨는 지난 5월말 한민족IT전문가대회를 기획하며 “불황으로 밸리를 떠났던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노려 다시 모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는 반도체 부품업계 가동률이 올라가고 재고가 바닥나고 있으며 주문이 늘어난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0여개 반도체업체 기업설명회(IR)를 주관한 글로벌프레스커넥션 엄가드 사장은 “기업들이 점차 홍보를 위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한창 불황일 때는 PR관련 비용과 업무를 가장 먼저 줄였기 때문에 경기회복의 신호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는 하나다. “실리콘밸리, 이미 바닥을 쳤다.”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