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들어 과학기술 추진체계 전반에 개혁의 바람의 일기 시작하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또다시 술렁거리고 있다. 국가 R&D 투자확대, PBS 제도개선, 평가 및 관리체제 개선, 기관고유사업비 확대 등 호재성 움직임도 적지 않지만 전체적인 변혁의 바람이 자칫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감사원이 최근 출연연 기능 중복 지적에 따라 연구기관 통폐합을 지적한데다 국회 정무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구회 통합을 위한 관련법 개정을 추진, 결과에 따라 IMF사태 이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이어 또다시 출연연이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우려하는 상황이다.
최근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 등 10명의 의원발의로 국회에서 논의중인 ‘정부출연연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정출연법) 개정안은 국무총리실 산하 기초·산업·공공기술 등 3개 연구회를 가칭 ‘과학기술연구회’ 하나로 통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왜 불안한가=감사원의 감사결과를 통보받은 국무조정실은 한마디로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실제로 국무조정실은 최근 열린 국회 상임위 답변에서 ‘감사원 보고서는 접수했으나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통보는 아직 하지 않았다. 연구 용역 과정을 거칠 것이며 연구회 통합이 구조조정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출연연법을 발의한 이성헌 의원측에서도 “연구회의 통합이 인원을 줄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회마다 10여명에 불과한 인력으로 매달 열리는 이사회와 행사 준비하는 일에 매달리기도 벅찬 상황으로 보고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정책연구나 기획 등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인력 재배치 정도의 통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출연연 연구원이 바라보는 입장은 다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단적으로 연구회가 통합될 경우 사무국장 자리는 하나인데 그렇다면 나머지 두 명은 그 밑에 가서 일해야 하는 것이냐, 특정분야의 전문요원으로 선발한 인력의 경우도 한 명으로 줄지 않겠느냐”며 정부가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연구회 체제가 개편되면 자연히 모든 출연연에 칼을 들이댈 것은 뻔한 이치”라며 “과제가 통합될 경우 인력을 안 줄이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 자체가 원활한 인력이동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한 현 출연연 구조에서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연연의 입장=현재 연구회나 출연연의 기능이 중복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또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통합을 시도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연구회와 출연연의 기능조정이 자칫 회복세를 보이던 연구 분위기를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이미 IMF를 겪으며 한차례 구조조정을 겪어 출연연들이 슬림화된 것이 사실인 만큼 개혁을 하려면 공개적으로 이를 꺼내놓고 논의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대덕연구단지 소재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에스키모인들이 힘이 약한 개를 집중적으로 괴롭혀 지친 다른 개들의 모범으로 삼듯 정부가 출연연을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우선 연구회 및 출연연의 기능을 재조정할 연구원 중심의 기능조정위원회부터 설치하는 등 공개적인 논의의 장부터 열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