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의 뮤직리서치]라이브 밴드가 온다

 “이제 음악 판이 좀 바뀌려나.”

 음악관계자들이 만나기만 하면 입에 올리는 말이다. TV를 겨냥한 미(美)소년 미소녀의 댄스그룹들은 갈수록 소구력이 떨어지고, 음반시장은 ‘죽은 게 아니라 없는 것’이라고 할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자 판이 바뀌어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전제한 음악이 안 된다면 그럼 음악은 어떤 쪽으로 가야 하는가. 바로 ‘공연’이다. 우수한 뮤지션이 많이 나오려면 음반보다는 공연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한다.

 최근 공연과 관련해 들리는 희소식이 있다. 서울 신촌과 홍대의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하는 그룹이 약 500팀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인디 밴드들이다. 말만 많았지 실제로는 전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인디 음악계가 비로소 바닥을 친 뒤 다시 서서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셈이다.

 전국적으로는 무려 3000여 그룹으로 추산되고 있다. 밴드음악이 위축됐던 90년대 말과 비교했을 때는 비약적인 증가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반가운 것은 고교 스쿨밴드도 근래 들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어떤 음악이 하나의 실체를 가지려면 그 분야의 음악인들이 많아져야 하는 게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청신호임에 틀림없다.

 인디음악 제작자 이희권씨는 “인디 밴드 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단련 기간을 거치면서 의욕뿐 아니라 실력을 갖춘 밴드도 많아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인디의 본질이 공연이거니와 현실적으로 그러한 밴드들이 살 길은 라이브 콘서트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공연을 겨냥하는 밴드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윤도현밴드, 자우림,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 롤러코스터, 체리필터 그리고 최근의 러브홀릭 등 잇단 밴드의 성공사례들 때문이다.

 상기한 그룹들은 어느 정도 제도권 매체와 공식 매니지먼트의 힘이 작용해 인디밴드라고 규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들도 밴드 형식에다 무게중심은 엄연히 공연이기 때문에 밴드 폭증을 자극한 것이다. 밴드들 저마다 결성이유는 다르겠지만 뭉뚱그려 ‘이제는 공연만이 살 길’이라는 공감대가 퍼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근래 생겨난 아마추어 인디밴드들이 매니지먼트 체제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연만으로 그룹살림을 유지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점에서 여전히 음악 판도 변화의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뮤지션 지망생들이 TV 댄스그룹 쪽으로 가지 않고 클럽 밴드로 몰리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뮤지션의 인프라가 형성되면, 또한 그토록 고대하던 장르의 다양화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클럽이 인디밴드들이 시끄럽다고 고개를 돌리지 말고(실상 조용한 음악도 많다), 클럽을 찾아 아마추어 뮤지션들에게 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야 TV주도의 감각적 댄스와 나른한 발라드 풍토에서 참신한 라이브 밴드의 ‘리얼’ 사운드가 숨통을 트는 새 판이 가능해진다.

 앞으로 ‘TV의 댄스 키드들’과 ‘라이브 클럽의 밴드들’이 다투는 대치 형국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클럽 밴드들의 힘은 관객밖에 없다. 관객들을 라이브 클럽으로 유인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게 어떨지. 다음과 같은 구호가 절실하다. ‘이제 공연장으로 가자! 공연에 한국음악의 미래가 있다!’

 임진모(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