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영남 여성벤처협회장(5)

250억원 매출에 매출목표 310억원. LG정밀 범용계측기 사업 인수를 전환점으로 이지디지털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아날로그기술에 디지털 오실로스코프 기술을 접목한 제품개발과 상품화를 통해 마켓리더가 되고자 했다. 마침내 작년에 150㎒ 대역폭을 갖는 디지털 오실로스코프를 출시했으며 올 5월엔 250㎒, 컬러타입 등의 시리즈로 6가지 모델을 탄생시켰다. 광대역 증폭기술 및 트리거링, 데이터 취득,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싱 외에 디스플레이 구현기술 등의 다양한 기술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접목돼 완전 자동으로 구현되는 기술은 국내에서는 최초다. 시스템적으로는 사실상 세계 최고의 회사들과 겨눌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도달하게 됐다. 기술신뢰도가 경쟁력이라는 확신 아래 전 직원이 노력해 온 가슴 벅찬 성과였으며 내겐 세계를 향한 도전의 원동력이 됐다.

 우리가 갖춘 핵심역량을 선택하고 집중화함에는 여러 가지 제약조건들이 있었다. 내가 여성CEO이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 남성 위주의 산업분야에서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케팅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업을 하다 보면 생겨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제약들을 어떻게 해결해 사업에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가가 CEO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 아닐까 싶다. 영업이야말로 단순한 상품이 아닌 나의 혼까지 팔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할 작업이다.

 이지디지털의 주력사업분야는 전자·전기 통신계측기와 전자제어기 둘로 나뉜다. 디지털오실로스코프의 개발과 전자계측기 사업분야는 혁신적인 발전을 거듭, 연간 20% 이상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으나 전자 제어기인 컨트롤러분야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은 제약들이 있었다.

 10년쯤 된 일이다. 여름 냉해가 거듭돼 에어컨과 선풍기 등의 판매량이 급속히 떨어지던 그 무렵, 에어컨 제품 속에 들어가는 컨트롤러 사업권 인수를 제안 받았던 나는 사실 날씨에 직결된 컨트롤러사업이야말로 하늘이 승패를 결정하는 사업이란 생각에 다소 망설였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라인이 쉬는 경우가 종종 있어 라인을 축소하느니 컨트롤러라도 생산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결정했다. 운 좋게도 생산 다음 해부터 무더위가 찾아왔다. 당시 OEM방식으로 컨트롤러를 생산, 한 다국적기업에 납품 중이었는데 다른 경쟁업체에서도 거래요청이 있었고 연이어 다른 회사의 주문들까지 밀려들었다.

 문제는 기존 거래처의 독점납품 요구였다. 나는 그 회사 연구실장을 만나 양산에 따른 각종 시너지를 설명하며 독점공급 요구를 거두도록 설득했고 나의 진심은 거래처의 마음을 움직였다. 14억원이었던 매출이 76억원, 100억원으로 늘어가면서 컨트롤러의 시장점유율과 경쟁력도 향상됐다.

 제약은 어떤 일에도 생겨나며 사업은 마치 그 제약들을 파도타기 하듯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