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통합(SI)시장에서 ‘선행사업 수행=본사업 수주’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다. 정보화전략계획(ISP)수립·개념연구·컨설팅과 같은 1단계 선행사업을 수행한 SI업체들이 2단계 본사업 수주가 당연시되던 기존의 관행이 무너지고 있는 것.
이같은 현상은 지난해부터 경기침체로 인한 SI사업 발주지연으로 수요가 사라지면서 SI업체들이 매출을 위해 1단계 사업자가 선점한 영역 빼앗기 경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5억원 정도인 1단계 개념연구 사업들과 달리 2단계 본사업의 경우 수십억∼수백억원 규모에 달하는 사례가 늘면서 1단계에서 ‘물을 먹은’ 업체들도 관례에서 탈피, 본사업 수주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게다가 사업자 심사에서 1차 기술제안서 평가를 통과할 경우 최저가입찰방식인 2차 심사에서는 조건에 따라 언제든지 최종 사업자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공공 SI프로젝트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팽팽한 접전끝에 지난 16일 우선협상 대상업체가 선정된 해군 전술 C4I체계 개발사업(예산 501억원 규모)에서는 지난해 1단계 개념연구사업을 수행한 삼성SDS는 사업권을 쌍용정보통신에 넘겨주고 말았다. 삼성SDS는 SK C&C·삼성탈레스 등 1단계 사업 공동수행업체를 모두 끌어모아 수성을 외쳤지만 결국 경쟁사에 사업권을 내주고 말았던 것.
지난달 사업자가 선정된 지상전술 C4I체계 소요장비사업(예산 110억원 규모)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졌다. 앞서 지상전술 C4I체계 3단계 통합사업을 따낸 바 있는 LG CNS·SK C&C·현대정보기술 등은 국방 SI분야 후발업체인 KT인포텍에 사업권을 빼앗기는 일격을 당했다. 1단계 제안서 기술심사를 통과한 KT인포텍은 2단계 최저가입찰에서 참여업체 중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내 사업권을 따냈다.
역시 지난달 사업자 선정작업이 끝난 국방동원체계 정보화 2단계 개념연구사업의 경우 1단계 동원업무 혁신방안(BPR)을 수립한 SK C&C가 사업권을 LG CNS에 내주고 말았다.
이에 앞서 각각 1, 2단계 지상전술 C4I체계 개념연구 및 응용사업을 맡았던 삼성SDS와 쌍용정보통신은 지난해 최대 국방 SI사업이었던 지상 C4I체계 3단계 통합사업을 LG CNS에 내주면서 이같은 현상을 예고했다.
금융권 재해복구시스템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올초 전사 차원의 비즈니스상시운용체계(BCP)를 수립한 제일은행이 이르면 7월중 2단계 재해복구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착수할 예정인 가운데, BCP컨설팅을 제공한 현대정보기술에 맞서 대형 SI업체들도 수주전에 가세할 준비를 하고 있어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삼성SDS와 현대정보기술이 각각 ISP를 수립한 증권예탁원 및 현투증권 재해복구 시스템 구축사업에서도 타 대형 SI업체들이 2단계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공공부문의 경우 올초 건설교통부 토지관리정보체계(LMIS) 구축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지난 99년부터 사업을 도맡아온 SK C&C를 누르고 삼성SDS컨소시엄이 수주, 사업자가 뒤바뀌게 됐다.
김광현 현대정보기술 상무는 “시장이 침체될수록 대형 SI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단계 선행사업 수주가 2단계 사업수주를 담보하던 모습은 점차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