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전자상거래에 세금을 부과키로 한 날이 다가오면서 세계 인터넷업계가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5월 EU는 비EU 회원국 기업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역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 부가가치세(VAT)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7월 1일부터 인터넷을 이용해 역내 소비자들에게 게임·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미국·아시아 등지의 업체들은 15∼25%의 VAT를 내야 한다. 그러나 각국 정부와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EU의 이같은 방침은 올해 하반기 세계 전자상거래업계 최대 현안로 부상하고 있다.
◇무엇을 담고 있나=이번 조치 시행으로 역외 기업이 인터넷을 이용해 EU내 소비자에게 게임·소프트웨어를 팔 경우 세금이 부과된다. 반면 EU 기업이 역외 소비자에게 판매할 경우는 면제된다. 역내 기업은 본국의 세금만 부담하면 되지만 비EU기업들은 고객이 거주하는 국가에서 정한 세율에 맞춰 세금을 내야 하기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세율은 룩셈부르크 15%, 스웨덴 25% 등 국가간에 차이가 있다.
◇EU의 입장=EU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대미 전자상거래 무역역조를 좁히기 위해 이같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2000년 미국은 인터넷을 통해 유럽시장에 7억달러에 달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했지만 유럽의 대미 수출액은 7000만달러에 그쳤다. 이같은 무역역조는 갈수록 악화될 전망이어서 EU의 결정은 인터넷을 통해 몰려들고 있는 미국 제품으로부터 역내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되고 있다.
◇각국의 반발=세계 각국은 EU의 조치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분야 경쟁력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EU의 과세가 역내 기업과 외부 기업을 차별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세계적 합의가 나올 때까지 과세조치를 유보해달라고 요구하면서 EU가 실제로 과세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업계는 현실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AOL·e베이·아마존 등 유럽에서 사업중인 업체들은 사업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판단, 이미 세율이 낮은 국가로 유럽 대표사무소를 옮기거나 판매상들에게 물리는 수수료를 올렸다.
◇전망=각국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EU의 입장이 워낙 확고해 과세의지를 꺾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각국 정부도 EU의 뒤를 따라 전자상거래에 세금을 물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유럽은 물론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U 내부에서조차 “전자상거래 과세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역내 세수확대에 기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거래량이 줄면서 역내 국가들의 전자상거래 부문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중남미가 신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EU의 구매력이 높다 해도 실제 콘텐츠·게임 등의 구매물량은 아시아·중남미가 EU를 따라잡고 있다. 따라서 EU가 제도 시행 후 각국의 ‘눈치(?)’를 보아가며 세율을 하향조정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