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인사이드]삼보컴퓨터와 세운상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청계 고가도로의 철거가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고가도로가 사라지고 청계천이 복원되면 이 일대 풍경도 180도로 달라지게 된다. 아마 가장 큰 변화는 청계천의 복원과 수십년 넘게 ‘서울의 만물상’으로 불렸던 청계천 일대 상권의 모습일 것이다.

청계천 상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세운상가다. 세운상가는 국내 주상복합건물 1호로 잘 알려져 있다. 박정희 정권 들어 도시정비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66년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4층 이하 상가, 5층 이상은 아파트로 만든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 바로 세운상가다.

세운상가는 건물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 일대 상권은 국내 전자산업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세운상가는 국내 전자산업이 태동할 당시 전자 기술의 모체였다. 그 시절 세운상가 엔지니어들이 홍콩·일본 등지에서 컴퓨터 부품을 사다가 조립하면 대기업이 브랜드를 붙여 팔았다. 청계천 일대 부품을 끌어모으면 탱크나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전자부품이 집결되는 지역이었다. 80년대 전자업종에 종사했던 기업이라면 세운상가를 잊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삼보컴퓨터다. 80년 7월 당시 전자기술연구소 부소장이던 이용태씨 등 6명의 창립멤버가 세운상가 허름한 사무실에서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한 회사가 삼보컴퓨터의 전신인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이다. 삼보는 이곳에서 일본 샤프의 개인용 PC를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상용 PC를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삼보가 PC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이 일대에 한국마이컴·희망전자·석영전자·골든벨 등 중소업체가 몰려 애플 호환기종 제품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국내 PC산업의 태동을 알렸다.

이어 세운상가의 상권은 90년 들어 용산 등지로 전자유통의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크게 위축됐다. 지금은 8개 상가에 걸쳐 전자제품·오락기·노래방기기 등 3000여개 점포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마저도 청계천 복원 공사와 맞물려 서울시가 마련한 장지동으로 이전하고 일부 점포는 용산이나 테크노마트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전자유통의 메카’로 불리던 용산상가에 빗대 ‘전자유통의 1번지’라는 명성을 얻었던 세운상가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