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의 뮤직리서치]한영애가 들려주는 트로트음악

 한영애가 트로트를 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의 ‘여울목’ ‘바라본다’ ‘누구 없소’를 좋아했던 팬들이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그러나 그가 리메이크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납득할 수도 있다.

 문제는 트로트에 대한 편견이다. 트로트를 무의식적으로 최하층민과 저 옛날의 케케묵은 정서로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각에서는 일제의 잔재로 간주해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한영애가 ‘봄날은 간다’를 부르려고 했을 때도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행여 그러다가 트로트 가수가 되면 어떡해?”

 한영애는 달랐다. 트로트를 떠나서 단지 그 곡의 매력에 끌렸다. 그는 “워낙 멜로디가 화려하고 한(恨)이 절절한 곡이라서 해보고 싶었다. 철저히 내 주도로 선택해서 음반에 담았다”고 말했다.

 ‘봄날은 간다’에 대한 반응이 괜찮게 나타나자 이제 반대는커녕 “한번 그런 기획앨범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주변의 요구가 생겨났다. 한 곡은 몰라도 앨범 전체를 트로트로 구성하는 것은 이미지 측면에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

 한영애를 ‘가장 반(反)트로트적인 세대에게 인기를 누렸던 가수’라고 한다면 훼절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있다. 당시 그 자신도 “한 60살쯤 됐을 때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자꾸 얘기하니까 고려하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며 흔들리는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영애는 속으로는 마음을 굳혔다. 어릴 적 들었던 좋은 트로트의 멜로디가 계속 떠올랐다. 음악적으로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주변 지인들과 상의해 부지런히 선곡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무심코 들었던 트로트가 막상 듣고 불러보니 예상 밖으로 ‘멜로디가 충실하고 구조도 탄탄했기’ 때문이다.

 ‘목포의 눈물’ ‘애수의 소야곡’ ‘황성옛터’ ‘외로운 가로등’ ‘굳세어라 금순아’ ‘사의 찬미’ ‘낙화유수(강남달)’ ‘타향살이’ 등이 그의 가창에 의해 새로이 해석되어, 앨범으로 막 출시되었다. 한국 초창기 대중가요역사를 약식 정리하려는 듯 앨범은 각 시대의 트로트 보석들을 망라하고 있다. 제목이 ‘Behind time 1925-1955’다.

 이 작품의 핵심은 ‘트로트에 대한 한영애 특유의 해석’이다. 팬들도 그가 흘러간 트로트를 어떻게 불렀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 점에서 ‘애수의 소야곡’ ‘외로운 가로등’ 그리고 1934년 노래 ‘꽃을 잡고’는 ‘역시 한영애!’ 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워낙 널리 알려진 곡들이라서 원곡 그대로의 맛과는 다른 한영애 색깔을 부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한영애도 “곡이 좋은데다 너무도 익숙한 곡이라는 사실 때문에도 부르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번 앨범은 그러나 그의 솜씨 좋은 노래 외에 트로트가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음악유산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트로트를 저학력의 무식함과 가난의 냄새로 여겼다면 이 앨범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그렇지만 우리는 흘러간 것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트로트에 도전한 한영애의 용기를 높이 사고 싶다.

임진모(http://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