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사장 부임 이후 필자는 연구개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우수 연구원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확신아래 핵심 연구원에 대한 동기 및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디지털TV연구소를 서울대 연구공원으로 이전하는 등 연구환경 개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디지털 시대의 선진업체로 도약하고자 하는 LG전자의 희망과 디지털TV를 사업화하고자 하는 나의 욕구가 일치해 1998년 LG전자의 CTO로 부임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오랜 미국 생활을 한 내가 과연 한국의 전자업체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해 LG전자 주요 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경영자로서 디지털TV를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도 가치있는 도박이라는 결정을 했다.
처음 얼마간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는 아픔이 있었으나 가족 모두 나의 결정을 지지한 것이 큰 힘이 됐다.
CTO로 부임해 연구개발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모토로 디지털TV의 핵심기술 개발을 주도하면서 디지털TV 사업의 초석을 다져나갔다.
첫째로 ASIC은 휴대폰의 퀄컴 칩처럼 핵심기술이 집적된 강력한 경쟁 무기며 부가가치의 근원이라 판단, 자체 개발에 나서 경쟁력 있는 디지털TV 전송 및 신호처리 칩을 개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나는 반도체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방침을 강력히 드라이브하면서 ASIC의 후공정을 전담하는 시스템IC 센터를 설립하고 ASIC 개발역량 강화 및 신속한 사업화도 추진해 나갔다.
둘째로 디스플레이는 PDP가 디지털TV로서 성공할 것을 확신하고 이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개발키로 했다.
기존 CRT 외에 다양한 디스플레이, 즉 PDP, LCD, PALC(Plasma Addressed Liquid Crystal), FED(Field Emission Display) 등 신기술들이 새롭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가 회사 사업의 성패를 가름하기에 여간 중요한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대화면 구현, 원가 등을 고려할 때 PDP가 최선책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PDP를 선택했을 당시 일본의 소니가 PDP와 LCD 기술을 복합한 PALC 개발에 주력하는 등 주요 업체별로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대한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었다. 세계적인 회사내에서도 서로가 어느 디스플레이를 선택해야 최선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정도였다. 우리회사 내에서도 이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
나는 당시 미국의 FED 관련 벤처업체인 캔데슨트(Candescent)사가 파일럿 및 양산라인 구축을 위해 LG전자에 대규모 지분 투자를 요청했을 때 투자 여부에 대해 특히 많은 고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