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파워맨 정홍식의 첫단추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

 

 역대 최고의 정통부 장관으로는 오명 현 아주대 총장이 꼽힌다. 그는 관가에서 고건 총리와 함께 역대 최고의 각료후보로도 자주 거론된다. 그렇다면 최강의 정통부 정책관료는 누구일까. 정홍식이라는 답변이 정답에 가깝다. 정보통신, IT정책에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100년 KT 독점구조를 깨고 통신시장 경쟁체제를 도입한 주인공이다. 데이콤·하나로통신·두루넷·KTF·LG텔레콤 등의 산파역이었다. 한국 통신시장의 판을 다시 짠 사람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토대를 세우고 명분을 전파한 것도 그의 몫이었다. “내 손으로 만든 하나로 등 후발사업자를 기업인 신분으로 다시 정리한다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는 그의 LG 사장 취임 회견은 그래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홍식이 파워맨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통신 및 IT시장이 질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변환기적 특성도 도움을 줬다. 정책적 선택이 모든 것을 가르는 시기, 그가 핵심 당국자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기회론이다. 하지만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낸 것은 그의 능력이었다. 통신 IT정책은 경제와 사회의 틀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다. 이를 입안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관료 정홍식’은 ‘최강’이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정홍식은 엄했다. 성격도 불같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논리적 명쾌성과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무장했다. 일에 관한 열정이 무서울 정도였다. 자연히 적당주의는 설 땅이 없다. 논리로 토론이 가능한 상대였다. 그래서 부하직원이건 기업인이건 무서워했지만 ‘인정’하고 ‘존경’했다. 전략적 사고와 일을 풀어나가는 솜씨가 어우러져 그는 정통부에서는 물론 정보통신·IT업계의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됐다.

 몇년의 야인생활로 힘이 빠져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어긋났다. “거래처 술접대 탓에 어쩌다 출근이 늦는 적이 있어요. 그러면 회장님이 꼭 혼을 내십니다. 오너인 당신이 늦으면 직원들은 어쩌나. 핑계대지 말고 가장 먼저 출근해 일부터 챙기는 모범을 보여야지.” 정홍식을 회장으로 영입했던 김동연 텔슨전자 부회장의 말이다. 정홍식은 텔슨 시절에도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김 부회장은 지금도 그것이 ‘고맙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정홍식 LG통신 총괄사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가장 뚜렷한 메시지가 있다. 정부와 시장이 반신반의했던 LG의 통신사업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정 사장 개인의 경력과 캐릭터까지 가세, 효과가 극대화된 셈이다. 그가 밝힌 구상, 예컨대 유무선 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거나 SK텔레콤이 다급해졌다거나 하는 전략적 해석은 오히려 그 다음이다. LG가 통신을 접을지도 모른다는 불신의 제거야말로 시장과 관계사 임직원들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벌써부터 정 사장에게는 여러가지 주문이 쏟아진다. 그 중에는 구조조정자금 등 그룹의 전폭적 지원이 요구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정 사장이 최우선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 있다. LG와 관련 통신회사들에 스며있던 패배주의와 무기력증을 터는 것이다. 직원들의 자존심을 다시 살리고 도전의식과 신바람을 창출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후발주자의 설움(?)을 톡톡히 당하면서 알게 모르게 희망과 비전이라는 단어를 잊어가고 있다.

 “KT나 SK텔레콤이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 어떤 정책과 자금, 인력보다도 확실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비즈니스 전략은 그 이후의 수순이다. LG가 강해야 KT와 SK텔레콤도 강해진다. 정 사장의 첫 단추 꿰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