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융합 시대]디지털 미디어 `꽃 피운다`

‘방송통신의 경계가 무너진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성·데이터·동영상을 3대 축으로 한 차세대 멀티미디어 서비스 구현은 방송과 통신 양진영에 이상적인 구호에 불과했다. 기존 통신이 점 대 점 서비스를 근간으로 사실상 음성용도에 국한됐고 협대역 네트워크의 특성상 대용량 멀티미디어 전송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방송 역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프로그램 송출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의 대중화에 힘입어 통신 및 방송 네트워크의 진화가 빠른속도로 전개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방송통신의 융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방송사업자들은 디지털화를 필두로 통신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으며 거대 통신사업자들이 방송시장에 속속 출사표를 던졌다. 가전·장비 등 관련 업체들도 본격적인 시장개화에 대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 시장이 수년 내 가장 각광받는 성장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 융합 서비스 잇따라 등장=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는 다양한 형태로 가시화되고 있다. 적어도 내년까지 상용화될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디지털미디어센터(DMC), 양방향데이터방송 서비스 등이 우선 주목받았다.

 DMB는 기존의 디지털라디오방송(DAB) 개념이 전환된 것으로 이동형단말기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CD수준의 음성과 함께 고화질의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방송위원회 등 정책 당국은 하반기부터 지상파DMB와 위성DMB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으로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에는 상용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DMC는 당초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디지털 전환의 초기비용 절감을 위해 도입한 개념이나 디지털방송서비스는 물론 주문형비디오(VOD), VoIP, 양방향TV 등 다양한 융합서비스 구현을 위한 종합 플랫폼으로 새로 자리매김했다.

 이밖에 지상파·위성방송·케이블TV 사업자들은 양방향 서비스가 가능한 데이터 방송 서비스도 준비중이다.

 저렴한 요금을 앞세워 고품질의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휴대인터넷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최근 폐막된 세계전파회의(WRC) 2003에서 우리나라는 휴대인터넷용으로 할당한 2.3㎓ 대역의 주파수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정통부는 오는 2005년 전후로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 통신·방송사업자 발빠른 움직임=서비스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통신사업자, 방송사업자들의 사업추진도 가속도가 붙었다.

 지상파·케이블TV·위성방송 등은 디지털방송 전환작업에 들어가면서 융합서비스를 준비중이다.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는 지난 2001년 하반기 디지털 본방송에 돌입한 데 이어 지난해 데이터방송 시험 서비스를 실시했으며 지상파DMB 사업권 획득을 위해 뛰고 있다.

 SD급 디지털방송을 서비스하는 스카이라이프는 최근 세계 최초로 DVB-MHP기반의 데이터방송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연내 진정한 양방향 정보 공유가 가능한 연동형 서비스도 준비중이다. 또 이 회사는 통신사업자와의 협력을 통한 방송·통신결합 서비스도 조만간 출시할 계획이다.

 SO들의 디지털전환 경쟁도 불을 뿜고 있다. 주요 복수SO(MSO)들이 연내 디지털 본방송에 돌입하면서 PPV·SVOD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을 방침인 가운데 DMC 구축을 위한 이합집산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올들어 거대 통신사업자들의 방송·통신융합 시장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KT·SK텔레콤·LG 등 통신그룹들은 대규모 자본투자와 브랜드력을 앞세워 단순히 개별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유무선 종합 플랫폼 사업자로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KT는 메가패스 가입자를 기반으로 한 AV서비스,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과의 제휴, 홈네트워킹 서비스 개시 등 방송·통신융합서비스를 신사업으로 중점 육성하고 있다. SKT는 위성DMB 주파수 확보문제가 매듭지어지면서 내년 3월 시범서비스를 목표로 컨소시엄 구성에 돌입했으며 DMC사업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통신 3강으로 도약하려는 LG의 행보도 공격적이다. LG는 데이콤·파워콤 등 계열사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유선·무선·케이블TV·인터넷 등을 묶은 결합형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또 이미 디지털 방송플랫폼사업자인 BSI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DMC 시장에도 파고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방송과 통신사업자간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위한 합종연횡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후방산업계 시장확대에 한 몫=단말기·셋톱박스·디지털방송장비 및 솔루션 업체들도 융합서비스 시대에 대비했다. 장비업체들은 그동안 디지털방송 표준의 미비 등으로 사업추진에 다소 어려움을 겪어 왔으나 본격적인 시장개화와 관련 표준 마련으로 장비공급이 활기를 띠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는 휴대인터넷 장비개발과 병행해 방송·통신융합서비스를 지원하는 다양한 장비 및 셋톱박스를 속속 선보였다. 시스코·알카텔·쓰리콤·텔슨정보통신·기가링크 등 국내외 통신장비업체들도 최근들어 DMC를 비롯한 디지털 방송용 장비 공급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에어코드·알티캐스트·에이스텔 등 방송장비 및 미들웨어 공급 전문업체들은 디지털위성방송·데이터방송용 솔루션 공급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콘텐츠 업체들도 각각 방송과 통신쪽에서 확보한 콘텐츠를 갖고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과도기 넘어설 관련 법·기구 정비=이처럼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면서 신규 서비스를 규제할 기구에 대한 논란과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방송과 통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서비스가 등장함에 따라 이를 통합 규제할 기구와 법적인 토대 마련은 불가피하다.

 통합 규제를 위한 방송통신위원회(가칭)의 설립문제가 이미 수 년 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방송위·정통부·문화부 등 관련 부처간 주도권 다툼에 밀려 진척이 더딘 게 현실이다. 또한 DMB·DMC 등 기존 방송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신규 서비스에 대한 법 개정도 하루빨리 마무리돼야 한다. 방송 및 통신 산업계 종사자들은 방송·통신 융합 시대가 이제 막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조기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법적 테두리를 시급히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