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지털 방송 서비스가 시작된 199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TV의 사업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PDP와 LCD, 프로젝션 등 다양한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제품을 시장에 새롭게 선보이는 한편 사업화를 위한 조직 체제를 확립했다.
특히 1998년 국내 최초로 연구개발부터 사업까지 전과정을 관할하는 PMO(Program Management Office) 조직을 신설해 디지털TV의 개발과 판매, 마케팅 등 연구개발과 사업 측면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쟁업체보다 우선적으로 비즈니스 시스템 전반에 걸친 사업화 전담 조직을 구축한 것이 디지털TV가 세계 선두로 도약할 수 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지털TV 사업화 초기에는 불투명한 사업성을 이유로 사업부문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서야 밝히는 일이지만 이 당시엔 내가 회의를 소집해도 CTO산하 연구소장 외에 사업부문 핵심 인사들의 참석이 너무 저조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사업 차원에서 디지털TV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조직적으로도 연구개발에서 사업화까지 필요한 운영체제 등을 정비하는 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이 결실을 거두었음일까. 요즘엔 R&D조직 외 마케팅, 영업, 홍보 등 관련 조직 전 부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디지털TV 전략회의에 참석자가 너무 많아져서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참석자를 축소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디지털TV사업의 중요성과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사업화를 위한 조직적 대응과 함께 역점을 둔 사항으로 나는 우선 국제적 연구조직을 중시했다.
이를 위해 세계 각지의 현지규격 대응 기술·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소를 세웠는데 대표적인 것이 미국 제니스 R&D센터와 일본 도쿄연구소, 중국 베이징R&D센터다.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은 러시아, 인도에 설립한 소프트웨어 연구소를 통해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토록 했다.
제니스는 R&D 및 마케팅 중심으로 방향 정립 후 원천기술을 확보한 VSB(Vestigial Side Band)기술에 대한 인핸스먼트(enhancement) 규격 개발로 특허권 강화 및 특허 기간을 연장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 및 중국 연구소도 현지 엔지니어를 활용해 위성 셋톱박스 등 현지형 제품 개발을 활성화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소프트웨어 강국인 인도 및 러시아에 설립된 소프트웨어연구소도 데이터 방송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