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인삼밭엔 붉은 꽃 피는데…. 간간이 빗방울이 날리는 들녘엔 초록빛이 한창이다. 부석사로 가는 길이다. 인삼의 고장답게 길가에는 온통 인삼밭이 펼쳐진다. 햇빛을 가린 차양 아래로 언 듯 스치는 붉은 빛. 인삼 꽃이 핀 것이다.
인삼밭 다음으로 많은 것은 사과밭. 풍기 인삼과 함께 영주 사과는 육질이 단단하고 싱그러운 향이 유난히 좋은 이 지역 특산물이다. 부석사 매표소를 지나 천왕문으로 오르는 길 양편도 모두 사과밭이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 길과 그 옆으로 보이는 새빨간 사과 덕분에 아름다운 가을 길로 손꼽힌다.
산 아래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경사진 길을 꽤 걸어 오르고, 천왕문을 지나면서부터는 비탈진 산자락에 계단식으로 축대를 쌓아 여러채의 건물을 차례로 두었으니 맨 꼭대기에 자리한 무량수전에 이르면 야트막한 산 하나를 오른 것과 비슷하다. 막힌 것 없이 시야가 탁 트이고 물결치듯 멀어지는 산자락이 조망돼 더 높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부석사 무량수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라는 책이 지난해 TV 프로그램에서 언급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무량수전은 불룩한 배흘림기둥뿐만 아니라 연한 개나리색으로 벽면을 칠해 유난히 눈길을 끈다. 건물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감상한 다음에는 기둥에 등을 대고 고개를 들어보자.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자락들이 멀리까지 이어지며 시원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무량수전 앞마당을 지키는 잘생긴 석등이나 안양루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신라 석등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것. 안양루는 절 아래에서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문 역할과 절 마당 앞에 놓인 누각 역할을 동시에 하는 건축물로 아래쪽에는 안양문, 마당쪽에는 안양루라는 현판을 각각 달고 있다.
무량수전 오른쪽 뒤편으로 호젓하게 뻗은 오솔길을 따라 가면 의상대사를 모신 조사당이 나온다. 전각 앞 철장으로 보호해놓은 선비화는 의상대사가 열반에 들기 전 꽂아둔 지팡이가 뿌리를 내린 것이라고.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엘리트들이 모여 공부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이다. 원래는 백운동서원이라 하던 것을 1550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임명되면서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사액받은 후 나라의 지원도 얻게 되었다. 서원이 자리한 곳은 숙수사라는 절터였는데 당간지주와 돌로 된 유물들이 남아있다.
소수서원은 여러채의 건물로 이뤄졌는데 현대의 학교와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다. 문을 들어서서 맨 처음 보이는 강학당은 당시의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의실, 그 뒤로 교무실 역할을 하던 직방재와 일신재, 기숙사인 학구재 등이 있다. 서원 제일 안쪽에는 사료전시관과 충효전시관을 마련해 퇴계의 친필이 들어있는 병풍, 명종이 직접 휘호한 소수서원 현판 등 서원의 유물을 전시해놓았다.
서원 옆으로는 물 맑은 죽계천이 흐른다. 죽계천 건너편에 들어선 취한대에서 유생들은 시를 짓기도 하고 때로는 탁족을 하며 여름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소수서원 일대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뤄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요즘 서원 옆 죽계천변에 선비촌을 만드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양반가옥과 초가, 정자 등 옛 건물과 함께 정원·연못 등을 꾸며 관광지로 조성하려는 것. 일부러 꾸민 선비촌이라 어색하지만 소수서원을 찾은 김에 잠깐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이밖에 6세기께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 단종의 복위를 위해 힘썼던 금성대군과 순흥고을 사람들의 피가 서린 금성단, 경륜선수들이 연습하는 경륜훈련원 등 풍기에서 부석사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여러가지 색다른 볼거리들이 있다.
돌아가는 길에 소백산 풍기온천에 들러 몸속까지 개운해지는 온천욕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풍기온천은 알칼리성 유황온천으로 온천욕을 하고 나면 피부를 매끈거린다. 인삼 사우나실에 들어가면 묵은 스트레스까지 말끔히 풀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글·사진=여행작가 김숙현 pararang@empal.com>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풍기IC로 빠져나와 풍기 읍내를 지나 부석사 표지를 따라 931번 지방도를 달린다. 소수서원, 부석면 소재지를 지나면 부석사에 도착. 풍기IC에서 20여분 정도 걸린다. 부석사 매표소 문의 (054)633-3258
·맛집 : 풍기읍내에서 부석사 방면으로 나가는 길목에 풍기인삼갈비가 있다. 풍기인삼과 한약재를 넣어 만든 갈비양념은 조춘행 사장이 직접 개발한 것. 왕갈비의 고기는 한우만 쓴다고. 바삭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살아있는 인삼튀김도 별미.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풍기IC에서 차로 5분거리. 왕갈비(500g) 3만원, 돼지갈비(200g) 5000원, 인삼갈비탕 6000원, 인삼튀김 1만원. 문의 (054)635-2382
·숙소 : 소백산 자락의 하나인 도솔봉과 옥녀봉 아래 자리한 옥녀봉자연휴양림이 좋다. 부석사에서 30분 정도, 풍기읍내에서 10분 정도 거리다. 이용하려면 사전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 문의 (054)636-5928